‘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지옥에선 통하지 않는다 [박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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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지옥에선 통하지 않는다 [박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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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ㅣ대기자 이른 아침부터 12·3 내란 때 국회 진입작전을 지휘했던 707특임대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는 “부대원들은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지휘관이 저렇게 말하는데, 일선 병사들이 느끼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의 국정운영 구상은 곧바로 ‘반헌법적인 또다른 내란 행위’라는 비판에 부닥쳤다. 연합뉴스이른 아침부터 12·3 내란 때 국회 진입작전을 지휘했던 707특임대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는 “부대원들은 김용현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지휘관이 저렇게 말하는데, 일선 병사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트라우마는 얼마나 클까. 그런데도 내란을 지시한 ‘수괴’ 윤석열은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버티고 있다. 더 얄미운 건, ‘어쩔 수 없지만…’이란 단서를 달면서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 애쓰는 한동훈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 그리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각료들이다. 이들의 방조와 묵인이 없었다면, 윤석열의 내란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세 십자군 전쟁을 다룬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는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가 주인공인 젊은 기사 발리앙과 체스를 두며 인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나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은 보두앵 4세는 발리앙에게 이렇게 말한다. “왕은 누군가에게 명령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은 또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네. 자넬 조종하려는 이가 왕이거나 그에 못지않은 권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영혼은 온전히 자네의 것이야.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라거나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변명은 더는 통하지 않을 거야. 이걸 꼭 기억하게.”왕이 죽고 이슬람군의 공격에 예루살렘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사제와 십자군 기사들은 ‘몰래 탈출하자’거나 ‘이교도에게 성지를 내줄 수 없으니 도시를 불태우자’고 주장한다.

결정적 순간에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건 잘못을 직접 저지르는 것보다 결코 죄가 가볍지 않다. 누군가의 방조가 없었다면, 내란이나 군사반란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덕수 총리는 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어떻게든 대통령의 이성 잃은 행동을 막았어야 했다. ‘나는 반대했지만 국무회의는 심의기구일 뿐이라…’라는 변명은 지옥에선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달리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대통령 명령을 거부한 국정원 1차장이 있고, 계엄 관련 회의에 항의해 사표를 던진 법무부 감찰관도 있다. 현 내각에서, 계엄을 전후해 형식적 사의 표명이 아니라 직접 업무를 거부하고 시민 편으로 걸어 나온 각료는 한 사람도 없다.오히려 한덕수는 12·3 내란이 실패하자마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같이 국정 운영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뻔뻔하기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의원 105명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하고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을 갈아치울 수 있는 총선이 앞으로 3년4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윤상현 의원은 유튜브 방송에서 “지금 욕 먹어도 1년 후에 국민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저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일까.1979년 12·12 쿠데타 주범들에 사법적 심판이 내려진 건 17년이 지나서였다. 이번엔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윤석열뿐 아니라 내란을 방조하고 암묵적으로 지탱한 정부 각료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도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1년만 버티자”고 마음먹는 걸 막으려면,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소환제 법안은 2020년 발의됐지만 제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려는 의원들의 외면으로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정치인이 국민을 두려워해야 쿠데타의 망령이 다시는 대한민국에 아른거리지 못할 것이다. 임기를 보장해도 대통령은 왕이 아니라는, 그래서 국민을 배반하면 언제든 그 임기는 단축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기회에 분명하게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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