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화의 선구자가 죽기 전 남긴 말 유영국 유진 도쿄_문화학원 김환기 상파울루비엔날레 김형순 기자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는 8월 21일까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20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을 총망라한 기념전을 전관에서 연다. 이번 전은 시기별 회화 70점, 드로잉 22점, 추상을 시도하는 계기가 된 회화 외에도 사진작품, 작가 사진 및 활동기록을 담은 아카이브 등으로 구성됐다.
유진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부친이 지금 살아 계셨다면 아마 'BTS'가 됐을 거란다. 그리고 아버지의 색에는 인류에 대한 희망과 미래의 꿈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하긴 그런 기질이 없었다면 그가 20세기 전반 당시로는 최전방 미술인 추상화에 투신할 리가 없다.유영국은 일본으로 가 요코하마 상선학교를 진학하려 했다. 자퇴 문제 등으로 거절당하자 결국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미술공부를 하기로 한다. 그는 일본에서 국적이나 출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도쿄 문화학원에 들어갔고, 거기서 동갑인 이중섭도 만났다. 드디어 1941년에 태평양전쟁 발발로 군국주의가 더 강화돼 실험 미술은 숨 쉴 곳이 없어지자 그는 1943년 귀국해 부친 일을 돕는다. 1944년 김기순 여사와 결혼, 가장이 되어 그림을 잠시 접고, 양조장 경영인이 돼 성공했다. 다음해 서울대 교수였던 딸 유리지도 낳았다. 이 금속공예가는 일본 강점기에 소실된 부친의 1938년 'R3작품'을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유영국은 1947년 김환기의 초청으로 서울미대에서 강의했다. 1948년 '신사실파'에 가입해 활동하다 6.25 전쟁이 나 가족 부양을 위해 또 사업을 해야 했다. 그러나 타고난 화가였던 그는 성공적 사업에도 만족하지 않고 창작을 재개했다.
그의 획기적 색채 감각은 그 당시보다 우리 시대와 맞는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40~50년 앞서 살았다. 당시로는 예외적 인간, 영원한 '모던보이'였다. 그런 와중에 1977년 그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심장박동기를 달아야 했다. 10여 차례 수술 등 생사의 문턱을 넘었다.그런 와중에 그의 최고 색채가 나왔다. 달관과 초월의 경지인가? 그의 색채는 안정된 구도 속 강렬하고, 환상적이고 원초적이고 웅장하다. 게다가 음악적이다. 그의 말대로 심포니 같은 것이 들려온다. 그는"색채란 써보면 참 재미있는 거요. 옆에 어떤 색을 가져와야 이 색도 살고, 또 이 색도 살고 또 그림이란 게 그래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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