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그 친밀감 속에서 청소년이 되었고, 그러다가 성교를 하고 아이를 갖게 된 것이다. 사회가 권하는 생애주기를 따르지 않은 이 소년 소녀에게 이제 사회의 직간접적인 제재가 시작된다. 그렇지 않았을 때, 이 소년 소녀에게 닥칠 상황을 우려하기에 어른들은 개입한다.
아이가 임신했다. 이 아이는 죽을죄를 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소년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그 친밀감 속에서 청소년이 되었고, 그러다가 성교를 하고 아이를 갖게 된 것이다. 강제는 없었다. 성욕은 타고난 것이었고, 애정을 느끼는 상대에게 발현되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이 임신 사실이 어떻게 어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을까. 소년이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낙태 비용을 달라고 한 것인지, 도주 비용을 달라고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을 다그친다. 상대의 몸을 먼저 생각했어야지! 그리고 그런 돈을 엄마에게 달라고 해? 나 때는, 그 정도 돈은 친구들끼리 빌려줬다. 너는 친구도 없냐!예상 못 했던 임신으로 말미암아, 확고해 보였던 가정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아니 이미 가 있던 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먼저, 청소년은 가출을 꿈꾼다. 아이를 가진 소녀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권한다. 아마도 이 소년은 마냥 무책임한 소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를 가졌다고 도망치는 일부 코피노 아버지 같은 사람은 아니다. 어른들이나 쓸 법한 어려운 단어를 종종 쓰는 소년이다. 그런 단어를 곧잘 쓰는 아이는 어떤 사람일까? 조숙한 아이일까? 거의 어른인 것일까? 아니, 그저 어려운 단어를 쓰는 아이일 뿐이다.
이것이 꼭 저 소년이 불행할 거라는 말은 아니다. 세계라고 부르는, 한 개인보다 훨씬 큰 어떤 것이 저 소년을 움켜쥐고 힘껏 구겨 놓았다. 이제, 저 아이는 평생에 걸쳐 그 구겨진 삶을 천천히 다시 펴야 하겠지. 그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구겨버렸다고 해서, 그냥 구겨진 대로 살다가 죽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은 아니다. 시간이 걸리겠지. 끈기 있게 펴다 보면, 어느 날 구겨진 것을 마침내 다 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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