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가 시다고 판정한 여우는 과연 자기가 정신승리 중이라는 사실을 머리에서 떨쳐낼 수 있었을까. 다른 여우들도 저 포도가 시다고 생각해줄 때야 비로소 자기의 정신승리가 완성된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도 여우의 관점이 아니라 포도의 관점에서 바라보아 볼까? 포도의 세계에서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근거 없이 시다는 평가를 일삼는 평가 권력의 폐해를 그린 작품일지도 모른다.
나도 정신승리 좋아한다. 그 어느 곳보다도 집을 좋아하는 나에게, 정신승리는 적성에 맞다. 오늘도 침대 위에서 중얼거린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평양냉면의 명가 피양면옥이 제격이지. 그러나 가서 줄서기 귀찮군. 내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냉면 맛은 다 거기서 거기야. 이처럼 정신승리는 냉면 맛까지 바꾸어 버린다. 누워서 다 해결할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정신적으로 연전연승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정신승리가 현실 승리는 아니라는 거다. 정신승리는 정신의 공갈 젖꼭지다. 여우의 문제는 제대로 승리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패배하지 못한 데 있다. 제대로 패배했다면, 점프력 강화 훈련으로 몸짱이 되었을 텐데. 승리했으므로 개선을 도모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현실이 결국 여우의 방문을 두드릴 거다. 이제 그만 침대에서 일어나. 나와서 청소하고 밥 먹고 운동하고 사회에 나가서 멀쩡한 사람처럼 굴어. 탈진한 여우는 다시 한번 정신승리를 고려한다.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가스라이팅이다. 현실을 바꾸는 것이 어려우므로, 대신 마음의 현실 인식을 조작하는 것이다. 세상에 넘쳐나는 자기계발서들이, 수많은 상담가들이, 이른바 멘토들이 마음 수련 운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저 넓은 세상을 어떻게 일거에 바꾼단 말인가? 그에 비해, 자기 마음은 어쩐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현실이란 인간 정신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인다. 누구의 관점과도 무관한 ‘순수한’ 현실은 없다. 타인, 권력자, 혹은 정부가 하는 가스라이팅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 길은, 어디에도 없는 순수한 현실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도 여우의 관점이 아니라 포도의 관점에서 바라보아 볼까? 포도의 세계에서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근거 없이 시다는 평가를 일삼는 평가 권력의 폐해를 그린 작품일지도 모른다. 같은 종류의 위로를 계속하는 것은 물론 한계가 있다. 시험에 낙방한 젊은이에게 노인이 전형적인 위로를 시전한다. “입맛이 쓰겠지만, 보약 먹은 셈 치게.” 그러나 9수를 거듭하는 수험생에게, 계속 “입맛이 쓰겠지만, 보약 먹은 셈 치게”라고 말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수험생이 볼멘소리로 대꾸하지 않을까. 그놈의 보약 그만 좀 먹고 싶어요! 그리고 이거 보약 아니에요! 방금 실연한 청년에게 ‘세상에 여자 많아’라고 위로한들, 효과가 있을까. 한때 세상에서 유일한 사랑이었던 이가 세상의 뭇 사람들 중 하나가 되는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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