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대의정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 주권이라는 허구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허구가 필요하다. 국민주권설은 국민 개개인 모두를 통치자로 만들기 위한 마법이 아니라, 소수의 통치자가 국민 전체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자임하기 위한 허구이다. 에드먼드 모르간이 역설했듯
세상은 악업과 고통으로 가득하고, 삶은 종종 불쾌하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필요하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이 그랬던가, 삶은 불쾌하므로, 담배를 피워야 견딜 수 있다고. 비흡연자들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구름과자가 없으면, 삶을 견디기 어렵다. 흡연자들이 주기적으로 담배 연기를 삼키듯이, 비흡연자들도 간헐적으로 희망이라는 구름을 삼킨다. 스스로 삼킨 희망에 기대어 사람들은 또 하루를 살아간다. 희망이라는 허구가 없었다면 오늘도 또 하루가 갔다는 평범한 우울감을 견디지 못했을지 모른다.연애 감정은 쉽게 휘발하고, 인간관계는 자칫하면 불쾌해진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필요하다. 철없던 시절의 여자친구가 그랬던가, 모든 관계는 불쾌하므로, 사랑을 해야 견딜 수 있다고. 철든 사람들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허구가 없으면,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흡연자들이 주기적으로 담배 연기를 삼키듯이, 사람들은 허겁지겁 “사랑해?”라고 묻고, “사랑해”라고 대답한다.
태어난 이상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는 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관계를 맺는 이상 정치체에 속하지 않을 수 없고, 정치체에 속하는 한, 누군가에게 다스려지지 않을 수 없다. 피치자는 늘 다수이고, 치자는 늘 소수이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상가 데이비드 흄은 결국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게 되는 현상은 정말 놀랍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 다수가 소수보다 분명 강할 텐데, 그 강한 다수가 결국 소수의 지배를 받는다. 정치적 허구가 그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왔다는 왕권신수설의 허구가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왕의 명령을 따랐었다.
현대의 대의정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 주권이라는 허구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허구가 필요하다. 성욕을 매개로 번식을 거듭하던 존재가 기어이 사랑이라는 픽션을 만들어냈듯이, 비루함으로 가득 찬 세속에서 기어이 신성을 발명해냈듯이, 허구는 삶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하다. “바꿀 수 없다면 사랑하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삶이 허구를 버릴 수 없다면, 허구와 더불어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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