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벌교건준위원장 엉뚱한 봉변도 서민호 월파서민호평전 월파_서민호평전 김삼웅 기자
1년 여 동안 돌보지 못했던 벌교사립송명학교와 남선무역회사 등이 많은 빚에 몰려 휴업상태가 되어 있었다. 일제가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반도를 병력과 물자의 보급기지로 만든 일제는 징병제·학병제·여자정신근로령을 잇달아 공포하면서 청장년들을 총알받이로 끌어갔다.
일제 말기 총독부는 이른바 미전향 사상범과 위험인물들을 대대적으로 감금하거나 전향공작을 폈다. 이때 변신한 민족진영의 인물이 적지 않았다. 서민호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고 풀려나와서는 고향집에 칩거하는 등 끝까지 몸을 더럽히지 않은 소수의 엘리트였다. 그리고 마침내 8월 15일 일제는 연합국에 항복했다. "이들이 준 35년간의 지긋지긋한 고통과 수모가 이 정도로 해서 보상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우리 조국과 민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할 당연한 응분의 벌은 있어야 했던 것이다." 서민호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수·순천 좌익청년 150여 명이 곡괭이·죽창을 들고 집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손에 수갑을 채워 이유 불문하고 광주도청 지하실에 감금하였다. 어처구니없는 봉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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