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사건 7개월간 옥고 서민호 월파서민호평전 월파_서민호평전 김삼웅 기자
한글학자가 아니어서 연구 분야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것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동안 연희전문에 1500원, 보성전문에 500원의 장학금을 내고, 1939년 5월 신윤국·김양수·박창서 등과 조선흥업을 창설하면서 자본을 대고, 1940년 낙성간이학교 설립에는 기성회장을 맡아 출자했다.
구속된 사람이 모두 29명인데, 그 중에 이극로·정인승·권승옥 등 3사람은 함흥경찰서에서 20일 동안 취조를 받다가 경찰서로 옮기고, 이인은 끝끝내 혼자 함흥경찰에 구검되었으며, 그 나머지 26사람은 애당초부터 홍원경찰서로 잡히어 가서 유치장에 있으면서 물 먹이기, 공중에 달고 치기, 비행기 태우기, 메어 치기, 난장질 하기, 불로 지지기, 개처럼 사지로 서기, 뺨치기, 얼굴에 먹으로 악마 그리기, 동지끼리 서로 치게 하기 등 갖은 악형을 다 당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942년 4월 원고의 일부를 대동출판사에 넘겨 인쇄를 하던 중 함흥에서 한 여학생이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조선말로 대화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취조를 받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일제는 33명 외에도 증인·기타 연루자 48명까지 검거하여 혹독한 고문을 가하고, 조선어학회 회원과 사전편찬에 협력한 인사 모두를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를 걸어 기소하였다. 함흥재판소는 이들에게"고유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조선민족 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라는 예심종결의 결정문에 따라 내란죄를 적용하고, 조사과정에서 가혹한 고문으로 이윤재와 한징은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저들의 표현에 의하면 고문에는 육전, 해전, 공전 이렇게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 육전이란 각목이나 목총이나,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집어 아무데나 마구 후려치는 것이다. 목총이 뎅겅뎅겅 부러져 달아나고 머리가 터져 피가 흘러내리는데, 처음 몇 대를 맞을 땐 견디지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나중에는 별 감각이 없어진다. 그러면 그들은 해전이나 공전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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