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 대한적십자사 회장 최근 중년의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을 찾아 친부모를 찾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이들 모두 유아 때 입양돼 한국과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붙이를 찾는다. 이러한 사연을 접하면 우리는 종종 ‘핏줄이 무
2018년 8월, 8·15 계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마지막 날인 26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우리 쪽 상봉단이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나는 북쪽 가족들과 작별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최근 중년의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을 찾아 친부모를 찾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이들 모두 유아 때 입양돼 한국과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붙이를 찾는다. 이러한 사연을 접하면 우리는 종종 ‘핏줄이 무섭다’라는 표현을 쓴다. 가족 간 유대를 중요시하는 우리의 문화를 잘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혈연관계의 힘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대한적십자사는 매년 명절 때가 되면 남과 북으로 헤어진 가족과 친인척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미상봉 고령 이산가족 어르신을 찾아뵌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필자가 뵌 어르신은 지금도 명절이 되면 90살이 가까운 나이에도 북쪽을 향해 아버지를 외치며 사무친 그리움을 달랜다고 한다.1945년 해방과 동시에 시작된 이산의 역사는 약 80년이 흐른 지금까지 가족들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13만4천명의 남쪽 가족이 이산가족으로 등록하였고 2024년 7월 기준, 3만7천명이 안 되는 인원만이 생존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마저도 생존 인원의 66.9%가 80대 이상의 고령자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산가족 1세대의 소원인 만남을 이뤄드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처럼 이산의 역사가 길어지고 이산의 기억을 공유할 기회가 없어져서였을까. 최근 이산가족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산가족이 왜 발생했는지, 어떠한 역사적인 흐름이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산가족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2000년대와 달리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단 4차례의 이산가족 상봉만이 이루어져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기회도 현저히 감소하고, 이산의 아픔을 갖고 있는 대다수가 생사를 달리하고 있어 발생한 일이라 생각한다. 올 초, 북한은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삼아 남북관계를 단절시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해 이산가족들의 오랜 숙원이 해소될 가능성이 요원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더하다.이산가족 문제는 특정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위협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산가족 문제를 역사적인 사건 중 하나로 치부해 버리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전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렇듯 이산가족의 문제는 이산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 인간의 기본권과 인도적인 측면에서 최대한 실효성 있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산가족 상봉, 전면적 생사확인, 자유로운 서신 교환과 고향 방문 등 이산가족 사업이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국가적인 차원의 관심이 중요하다. 이산가족 문제는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고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 이산가족 사업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재개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남북 이산가족 사업에 대한 국내·외의 지지와 관심이 높게 유지될 수 있도록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대한적십자사는 오랜 기간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남북적십자회담, 이산가족 유전자 검사, 영상 편지, 생애보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전면적으로 이산가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생존 연수가 82.7살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새기고, 남과 북의 가장 시급한 인도주의 현안인 이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 이산가족 사업을 보조하며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진력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모든 남과 북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행복한 명절을 맞이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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