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마주한 미역국, 그리고 고3 딸의 입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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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마주한 미역국, 그리고 고3 딸의 입시 이야기
입시고3수험생

수험생 딸을 위해 1년간 미역국을 끊었던 아버지의 이야기와 함께, 치열했던 2024년 입시 현실과 부모의 심정을 담아낸 기사입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그릇을 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오늘 저녁 밥상에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미역국 이 올라왔다. 지난 1월부터 입에 대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열흘이 모자란 1년 만의 조우다.

올해는 딸이 인생에서 딱 한 번뿐이라는 고3 수험생이 되는 해였다."요즘 세상에 무슨 미신이냐" 하겠지만 부모 마음은 합리적인 이성보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앞서는 법이다. 미역국의 미끈거리는 식감이 딸의 시험 운을 미끄러뜨릴까 싶어,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을 1년간 끊는 우리만의 결의를 다졌다. 집 밥상은 물론, 직장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미역국은 철저한 금기였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나는 미역을 철저히 외면했다."아빠, 나 재수할게요.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아.""딸, 많이 고민했겠지. 하지만 정시로라도 들어갈 수 있는 학교에 원서를 넣고, 내년에 학교 다니며 다시 준비하는 '반수'도 있잖아. 정말 재수를 결심했다면, 올해처럼 해서는 안 돼. 일주일만 더 치열하게 고민해 보자."우리가 겪은 이 진통은 비단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사연은 아니다. 올해 입시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적용 전 마지막 기회라는 불안감에 수능 지원자가 전년 대비 6%나 늘어난 55만 명을 넘어서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통계는 현실의 벽을 더 차갑게 보여준다. 전국 4년제 대학 모집인원은 34만여 명으로 전체 지원자의 61% 수준이며, '인 서울'로 좁히면 문은 더욱 좁아진다. 서울 소재 48개 대학 정원은 약 6만 8천 명, 전체 지원자의 상위 12%만이 통과할 수 있는 바늘구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는 서울행을 꿈꾼다. 지방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해 신음할 때, 수도권 대학들의 경쟁률은 적게는 7~8대 1에서 많게는 수십 대 1까지 치솟는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해야 그나마 좁디좁은 취업의 문턱이라도 넘어볼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당연한 출발선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아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몬다. 하지만 숫자가 증명하듯,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극소수다. 결국 대다수는 예비 합격 번호를 부여잡고 전화기가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낸다. 1차, 2차, 3차... 대기 순위가 하나씩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희망 고문 그 자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예비 번호조차 받지 못한 수많은 학생에 비하면 배부른 넋두리일지 모른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수능 성적표를 쥐고 정시라는 더 차가운 전쟁터로 나가거나, 기약 없는 추가 합격의 기적을 바라며 긴 겨울을 버텨야 한다. 이 잔인한 레이스 속에서 속이 타들어가고 피가 마르는 건 수험생 당사자뿐만이 아니다. 부모, 형제, 가까운 지인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앓는 열병이다. 사회의 인식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취업을 목적으로 특성화고에 진학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고 학생들의 종착지는 여전히 '대학'이다. 입학 당시만 해도 대학 진학에 큰 뜻이 없던 아이들도 고3 교실의 분위기에 휩쓸리면, 결국 자신이 갈 수 있는 학교를 찾게 된다. 불안한 청춘에게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는 안도감은 그 무엇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폭풍우 같던 시간을 지나, 딸은 어제 드디어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마음 졸이며 기다려온 결과였기에 기쁨은 몇 곱절이었다. 비록 아이가 지원한 대학 중 후순위에 있던 곳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딸도, 아내도, 나도 지금은 서울의 명문대가 부럽지 않다. 더 이상 전화기를 붙들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딸아이에게 드디어 '소속'이 생겼다는 현실적인 안도감에 비로소 우린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이제야 숟가락을 들어 미역국을 한 술 뜬다. 미끈하고 부드러운 미역이 목을 타고 따뜻하게 넘어간다. 1년 전, '미끄러질까 봐' 두려워했던 그 식감이 오늘은 막혔던 속을 뚫어주는 위로의 맛이다.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며 우리는 알게 되었다. 대학 간판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비록 '1지망'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딸은 실패를 견디는 법을 배웠고, 우리 가족은 서로를 다그치기보다 기다려주는 인내가 사랑임을 깨달았다. 오늘 밥상에 오른 미역국은 딸의 땀과 눈물, 그리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받은 축배다. 이 따뜻한 국을 비우고 나면, 딸은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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