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던 5.18 시위대와 함께한 '사직동 여성들' 5.18_민주화운동 동화작가_윤기현 집창촌_여성 5.18_민중항쟁 정병진 기자
농민운동가로 5.18 항쟁에 참여한 윤기현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5.18을 흔히 '민중항쟁'이라 하면서도 정작 항쟁에 끝까지 참여한 '민중들'은 소외돼 있다"면서 당시 노숙하던 시위대를 도운 유흥가 여성들에 대해 생생히 증언했다.
이 증언은 '황금동 여성들' 외에 '사직동 여성들'도 5.18 항쟁 초기부터 참여했음을 알려주는 새로운 내용이라 주목된다. '사직동 여성들'에 대한 내용은 언론이나 문헌에 남겨진 바 없다. 1980년 5월 19일 비오는 밤... 처음 나온 증언"5월 19일에 '함평 고구마 사건 승리 2주년 기념식'을 북동천주교회에서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간부들이 사전 연행되고 남은 사람은 도피해 행사를 못 했다. 그 행사에 온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흩어지던 중 기독교농민회 몇몇 동료와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저물녘까지 시위를 한 사람이 꽤 많았다. 우리는 어디 갈 데가 없으니까 사직공원에 가서 날을 새웠다. 계엄군이 공원까지는 안 따라왔다. 5월 19일 밤과 20일 심야·새벽에 그곳에서 잤다. 근데 20일 0시께 되니까 비가 와서 공원에서 잘 수가 없었다.
"아니다. 황금동 여성들도 참여했다. 하지만 우리를 도운 분들은 황금동 분들이 참여하기 이전이다. 그런 경험을 하신 분들 중에 아직 증언한 분들이 없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비를 피하도록 우릴 도운 분들은 20일 밤비가 올 때 하신 거고, 황금동 여성들은 21일부터 참여해서 그쪽에 공수부대가 배치됐다.""그렇다. 시위의 무대가 5월 21일부터 그쪽으로 옮겨지면서 그곳 여성들이 시위대에게 밥해주고 숨겨 주고 그러다가 대거 참여했다.""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거기에 있는 여자들도 우리랑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선입견이 깨졌다. 진보적인 목사님들은 좋은 소리는 다 해 놓고는 막상 싸울 때는 없었다. 반면 생각지도 못했던 여성들이 우릴 도왔다는 사실에 감동했다.""화순팀, 곧 화순 탄광 노조원들로 보이는 탄광 노동자가 20명쯤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나중에 화순 탄광에서 다이너마이트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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