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이었던 경복궁 안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이었던 선원전의 편액이 사라진 지 약 100년 만에 일본에서 환수돼 돌아왔다. 국가유산청은 '각 궁궐의 선원전 건립 및 소실과 관련한 정황, 기록 등을 고려할 때 1868년 고종 당시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편액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9세기 경복궁 선원전의 편액’이라는 유물 소개에 우리 측이 긴밀하게 움직여 경매를 취소시킨 뒤 소장자 쪽에 '조선 왕실 문화유산이니 반드시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조선 왕조의 법궁이었던 경복궁 안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이었던 선원전 의 편액이 사라진 지 약 100년 만에 일본에서 환수돼 돌아왔다.
선원전은 조선시대 궁궐 내에서 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왕이 직접 분향, 참배 등의 의례를 행하던 신성한 공간이다. 왕들이 거처한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에 각각 선원전이 있었다. 선원은 ‘옥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중국 역사서 ‘구당서’에서 왕실을 옥에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 국가유산청은 “각 궁궐의 선원전 건립 및 소실과 관련한 정황, 기록 등을 고려할 때 1868년 고종 당시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편액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재건한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조선 후기 이조참판,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서승보의 서체다. 이번 편액의 필획 등 서체 특성을 분석한 결과 서승보의 글씨로 추정된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이와 함께 사용된 안료 분석 결과도 기존의 의궤 기록과도 대부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재건 당시 경복궁 선원전은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는 권역에 위치했다. 1897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 비어 있다가 이후 경복궁 훼철 과정에서 헐렸다. 헐린 전각은 1932년 서울 장충동에 있던 박문사를 짓는 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문사는 조선총독부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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