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고! 그 말씀을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다시금 새겨듣고 답한다. 마음이 안정될 시간, 믿고 맡길 시간, 사랑할 시간, 용서할 시간, 곤경을 헤쳐 나갈 시간,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 고통 없는 인생이란 없으니, 핀란드인들이 말하는 ‘시수’를 우리 인생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도 각자에게 닥친 힘든 상황을 잘 통제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시수’는 회복탄력성과 역경 극복을 강조한다.
화엄경 강의를 마치자마자 미리 싸둔 걸망을 들고 길을 나섰다.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함이다. 차창 밖으로 고층빌딩이 홱홱 지나가고, 한강을 건너 빠르게 서울을 벗어났다. 어디쯤엔가 멀리서 모내기를 마친 논이 보였다. 물을 가득 품은 논에 잔디처럼 생긴 어린 벼들이 햇살을 받아 푸릇한 빛깔로 웅성거렸다. ‘아, 나도 저리 어린 시절이 있었을 테지.’ 생각이 덮치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동시에 논에 물 대러 나간다던 아버지의 음성이 환청처럼 들려왔다.어려서 아버지를 따라가 논에 물 들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어른들은 논이 마를까 봐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주 걱정했다. 가진 게 너무 없어서 논에 물 대는 것도 큰일인 시절이었다. ‘거친 밥 먹고 물 마시며 팔 구부려 베게 삼아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지 아니한가’, 이런 폼나는 공자님 말씀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저 궁핍한 유년의 삶이었다.
청풍명월에는 값이 없다 했던가! 기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릴 적 맑은 추억과 오버랩되면서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대구에 도착했다. 올 초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은사스님이 계신 절에 내려가 법회를 본다. 대구 화성사는 지금 내가 머무는 서울 청룡암보다 훨씬 크고 넓은 도량이다. 그런데 실은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에도 일정을 조정하여 일손 보태러 내려가는 길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출가자로서 나의 뿌리요, 집이다. 그러니 내겐 푸근한 고향집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나는 일찌감치 독립했고, 대중 포교에 힘쓰며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은사스님 눈에 비친 나는 여전히 고집 센 어린 상좌에 불과했나 보다. 처음엔 미덥지 않은 눈으로 걱정하며 지켜보는 게 역력했다. 하지만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장성한 자식의 살림살이를 바라보듯 든든해 하는 게 느껴진다.
핀란드에는 ‘시수’라는 정서, 즉 생활 철학이 있다고 한다. 역경을 만났을 때 불굴의 의지로 내면에 힘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파고들어 극복하는 힘이다. 잦은 전쟁과 혹독한 기후, 굶주림 등의 척박한 역사를 견뎌오면서 단단하게 형성된 정신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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