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72명이 희생된 참사, 어떻게 응시하고 기록하며 기억해야 할까

72명이 희생된 참사, 어떻게 응시하고 기록하며 기억해야 할까 SBS뉴스

런던, 켄싱턴 지역의 한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났다는 속보를 접했다. 켄싱턴이면 당시 거주지에서 꽤 먼 지역이었다. 왜 여기까지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의아해하며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나는 헉하고 숨을 멈추었다. 저 멀리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있었다. 72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렌펠 타워 화재였다.

또한 화재 진압에 나섰던 소방당국이 긴박한 현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입주민들에게"가만히 있으라"는 원칙적 가이드라인을 첫 97분간 반복한 것 역시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였다. 대화도 배경 음악도 없는 다큐멘터리 '그렌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3년 4월 7일, 하이드 파크 내 위치한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다큐멘터리 '그렌펠' 상영이 시작되었다. 영화 '노예 12년'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작품이다. 생존자와 유가족을 초대한 프라이빗 뷰잉 후 일반에게 공개된 24분짜리 영상 속에는 대화도, 배경 음악도 존재하지 않는다.영상은 멀리 런던을 내려다보는 항공 샷으로 시작한다. 혼잡한 도로 소리, 새소리 등 부산한 삶의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촬영하던 헬리콥터가 날카롭게 방향을 전환하면 이윽고 검게 탄 건물의 잔해가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연상되는 삶의 흔적에 눈을 돌려 외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이것이 감독의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는 무자비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집에서 집으로, 한 채도 빠뜨리지 않고 천천히 옮겨가며 참사를 기록한다. 저층으로 내려오면 건물을 흰 천으로 가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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