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는 부모를 계도하고 가족을 복원시켜 그 안으로 돌려보내는 게 최선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발생하는 아동 학대의 양상은 가족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가족주의 환상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집에 가면 개 줄에 묶여 있다던 아이를 알고 있다. 열다섯 살이었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그 아이는 머리도 짧게 깎였는데, 잘렸다고 해야 할지 뜯겼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였다. 가출을 세 번인가 네 번인가 하고 난 후였다. 아빠에게 맞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것도 실실 웃으면서 했다. 웃으면서 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몸에 있는 몇 군데 멍을 보여주었는데,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그 정도면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이라고만 물었다. 뭐라고 대답했더라. 그냥 또 실실 웃었던 것 같다.사실 그 동네에서 맞지 않는 아이는 없었다. 온가족이 함께 보는 TV에서도 그 정도의 폭력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했다. 집에서도 맞고, 학교에서도 맞았다. 나도 가끔 맞았다. 초등학교 때, 한번은 멍이 들어서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이 그 멍을 발견했다. “이 멍은 왜 생긴 거니” 물어서 엄마한테 혼났다고 했다.
삼십 년도 더 된 일이라고? 그런데 왜 나는 같은 내용을 오늘자 신문에서 읽고 있는 걸까. 4층 난간을 타고 목숨을 걸고 탈출한 아홉 살 창녕 학대 아동의 기사를 읽으며 나는 쥐어뜯긴 머리로 학교에 오던 삼십 년 전 아이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겨우 이제야, 그때 그 아이의 가출도,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죽을 만큼 맞아서 날마다 도망을 갔던 거라고, 도망을 갔는데 끝까지 도망갈 데가 없어서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갔던 거라고. 그 아이는 어느 날 정말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지막 가출, 아니 탈출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결국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맞지 않고 살고 있을까.
소위 ‘훈육이 되는 체벌’이 전문가의 이름으로 육아책에 씌어 있던 시절도 있다. 가령 이런 내용, 아이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정해라. 아무 데나 때리지 말고 일관적인 체벌의 방법을 정해라. 잡히는 대로 사용하지 말고 ‘사랑의 매’ 같은 정해진 도구를 준비해라. 체벌이 끝나면 아이를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줘라. 그래야 폭력이 아닌 훈육으로서의 체벌이 된다고 했다. 요즘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심심찮게 나오는 내용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주장 한편에서 여전히 이런 체벌이 바람직한 육아법이 되기도 한다. 한때는 ‘타이거 맘’이었고, 얼마 전에는 ‘프랑스 부모 교육법’으로 유행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지난해 체벌 금지를 법으로 명시했다. 우리나라도 부모의 징계권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부모에 의한 체벌이 자녀 보호와 교육이라는 이유로 법적으로도 용인되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개정안 추진 움직임을 알고야 놀랐다. 이제라도 다행이지만 한 가지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럼에도 발생할 학대 상황에서 도망치는 아이를 누가 어떻게 품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창녕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여전히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오, 맙소사 사랑이라니! 그 사랑에 아이를 맡기지 않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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