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서평을 읽으면서 책에 기대지 않고도 오롯이 존재하는 서평이 가능함을 보았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아주 큰 꿈이었지만 불가능한 꿈처럼 사람을 자극하는 것은 없다. 📝 김이경(작가)
1년 전 이맘때 SF 판타지 작가 어슐러 K. 르 귄의 산문집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읽었다. 책장을 덮을 즈음 〈시사IN〉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다. 오래 생각도 않고 “네, 쓰지요” 했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독서 칼럼을 연재하는 일 같은 건 이제 정말 그만둬야지, 했는데. 갑작스러운 변심은 순전히 르 귄의 책 때문이었다. 맘에 드는 책을 읽으면 가슴이 뛰고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이는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읽었을 때 내가 바로 그랬다. 르 귄은 독자적인 환상 세계를 구축한 ‘어스시 시리즈’ ‘헤인 우주 시리즈’로 유명한데, 그런 방대한 작품을 쓰는 와중에도 서평을 꾸준히 썼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경이로운 생산력은 나를 주눅 들게 함과 동시에 자극했다. 열심히 써야지. 나를 더 자극한 건 그가 쓴 문장이었다.
팽팽하게 부풀었던 가슴은 한 편의 원고를 쓸 때마다 바람이 빠져 납작해졌다. 르 귄처럼 거침없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대거리하고 말하겠다는 처음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오! 나도 이렇게 해볼까?” 앞이 안 보일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심이 본심이니까. 나는 다시 어슐러 K. 르 귄을 펼쳤다. 이번엔 그가 여든이 넘어서 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로. 블로그에 쓴 글을 모은 책인데 첫 페이지부터 웃음이 난다. 2010년 10월 여든 살에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를 밝히면서, 처음엔 블로그란 말도 싫었다고, “콧구멍을 가로막은 장애물 이름” 같다고 한 걸 보고 한참 키득거렸다. 기발하면서도 정확하고 유머러스한 비유를 보는 즐거움이야말로 글을 읽는 재미인데, 나는? 자괴감에 빠지기엔 너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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