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 르포작가·‘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아이 돌봄 서비스가 시작됐다. 아이를 돌보다 보면, 청소, 조리 등의 집안일도 하기 마련이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할 때 밥이나 간식을 차려주는 것도 돌봄의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아이 돌봄 서비스가 시작됐다. 아이를 돌보다 보면, 청소, 조리 등의 집안일도 하기 마련이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할 때 밥이나 간식을 차려주는 것도 돌봄의 일환이다. 문제는 서울시가 제공한 ‘업무 범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아이만 아니라 동거가족을 위해 ‘가볍거나 간단한 가사서비스’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가이드라인을 보고 이주노동자가 하는 일의 공식 직명을 확인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였다. 한국과 필리핀 정부가 체결한 업무협약에선 ‘돌봄 제공자’였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왜 협약과 다른 직명으로 명명했을까?
가사관리사라 일컫는 순간, 그 종사자가 아이 보호자의 집안일까지 떠맡게 되는 건 어쩌면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집안일 전반을 관리한다’는 직명의 뜻대로, 업무 범위를 모호하게 해 최저의 급여를 주고 최대한의 업무를 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이런 상황은 집안일에서 파생된 업종인 건물청소에서도 발견된다. 과거에 노조를 막 조직한 ㄱ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잡초 뽑기, 제설, 낙엽 쓸기, 화단 가꾸기 등의 ‘업무 외 노동’을 사쪽에 금지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사쪽은 그들과 계약했던 근로계약서의 한 항목을 가리키며 이렇게 답했다. “여기 직종에 ‘미화직’이라 쓰여 있죠? 미화라는 게 여사님들이 화단 정리하고 잡초 뽑는 것까지 다 포함된 거예요.” 이는 미화의 뜻이 “아름답게 꾸밈”이니, ‘캠퍼스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인 화단 가꾸기도 미화 작업에 해당한다는 논리였다.
물론 업무 범위를 단박에 인지할 수 있는 직업명을 사용하면서 그 범위에 벗어난 일을 강제하는 경우도 있다. 공동주택 경비노동자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경비업법에 따라 정해진 경비업무만 해야 했지만, 예전부터 관행적으로 분리수거, 외곽청소, 주차관리 등 관리업무도 겸했다. 그러다 2021년 이른바 ‘경비원 갑질 방지법’의 시행으로, 경비원의 업무 범위가 조정됐다. 그런데 이 업무들을 설명하는 문구가 ‘청소와 이에 준하는 미화의 보조’처럼 모호했다. 이를 더 명확하게 할 필요성이 제기되자, 정부는 법 시행 전에 허용 업무와 불가 업무의 예시를 제시했다. 이후에 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업체를 통해 경비노동자들에게 음식물 쓰레기통 세척을 지시했다. 외견상 이 업무 지시가 갑질처럼 보여도, 쓰레기통 세척을 정부가 예시에서 불가 업무로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었다.
요양보호사가 돌보는 노인뿐 아니라 그 동거가족을 위한 일까지 한다는 주장을 쉽게 접한다. 어쩐지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처지와 많이 닮아 있다. 그들의 업무를 만약 집안의 가족 중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대개는 여성, 더 특정하면 엄마에게 맡겨진다. 더군다나 엄마는 업무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용돈 정도만 받거나 아예 무료로 일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엄마가 이 일을 할 수 없을 경우에 그 빈자리는 여성 노동자로 대체되는 편이다. 문제는 그들에게도 ‘엄마와 같은 노동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적과 상관없이 가사관리사, 요양보호사 등을 직업명 대신에 엄마와 관련 있는 호칭인 여사님 또는 이모님으로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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