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앞으로 쏟아지는 빗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만 흘리다가 일 시작 후 처음으로 배민 관제팀에 전화를 걸었다. “저기 죄송한데… 지금 이런 날씨에도 일하는 사람 있어요?” 📝 변진경 기자
배달 라이더 장희석씨는 오토바이 운전석 앞에 파란색 미니 우산 하나를 꽂고 다닌다. 예쁘라고 단 게 아니다. 내리쬐는 여름철 햇빛으로부터 핸드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햇빛 받아서 뜨거워지면 충전도 제대로 안 되더라고요.”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대행 플랫폼 앱을 통해 콜을 받는 장씨에게 핸드폰은 소중한 생계 수단이다. 정작 장씨의 머리 위에는 햇빛을 가려줄 보호막이 없다. “낮 12시 넘어 해가 머리 위로 올라가면 햇빛 피할 데가 거의 없어요. 너무 더울 때는 버스 옆에 섰을 때 생기는 그늘도 감사할 지경이죠.” 열을 오래 받은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폭염에 노출된 후에는 신체감각과 기능이 훅 떨어지는 걸 스스로도 느낀다. “오토바이에서 내릴 때 땅을 밟으면 머리가 ‘핑’ 하고 돌 때가 있어요. 그제야 깨닫죠. ‘아 덥구나’.” 그늘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잠깐 한숨을 돌려봐도 띵한 기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사실 휴식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
‘내가 이걸 안 잡으면 남이 분명 잡을 텐데’ ‘지금 나가면 분명 단가 높은 콜을 잡을 수 있을 텐데’라는 불안감과 조바심을 내려놓기가 힘들어요.” 라이더 일을 시작하고 맞은 첫 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도 그랬다. 빗물 속에서 오토바이에 앉아 울어버린 날이었다. 서울 이태원 쪽에서 남산 2호 터널을 넘어 명동까지 가는 콜이 하나 떴다. “추가금이 많이 붙었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잡아버렸어요.” 이태원에서 음식을 받고 터널은 일단 넘었는데, 터널 밖으로 나오니 헬멧 앞으로 쏟아지는 빗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못 가겠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만 흘리다가 일 시작 후 처음으로 배민 관제팀에 전화를 걸었다. “‘도저히 못 갈 것 같은데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나’ 물어본 뒤, 너무 궁금해서 또 물어봤어요. ‘저기 죄송한데… 지금 이런 날씨에도 일하는 사람 있어요?’라고. 웃더라고요. ‘네, 많아요’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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