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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곳 옮겨다닌 소학교 김자동 김자동평전 김삼웅 기자

김구가 주도한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이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제의 천장절 겸 전승축하기념식에서 폭탄을 던졌다.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해 일제 고위장성 등 여럿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임시정부는 더 이상 상하이에 머물지 못하게 되었다. 일제가 프랑스에 압박하고 프랑스조계 당국이 더 이상 보호해 줄 수 없다며 이전을 요구함으로써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임시정부의 이동코스는 1932년 5월 상하이를 출발하여 항저우~자싱, 1934년 11월 난징~진장, 창사, 광저우~퍼신, 류저우, 치장~충칭이다.임정요인들은 그때마다 한 곳에 집중 거주하기보다는 분산해서 살았다. 도시지역보다 주변 지역의 거주비가 싸기 때문이다. 김자동의 가족도 이주지역의 주변에 셋방을 얻고 살았다. 내가 처음 들어간 학교는 장시성 평청현에 있는 소학교였다. 1935년 봄, 일곱 살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앉아서 임정의 돈을 축내는 게 싫다며 잠시 중국 지방정부의 공무원 일을 하셨다. 그때 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많이 귀여워했다. 여자 선생님 한 분은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후동이는 가감법도 할 줄 알고 한자도 많이 아니 1학년에 다닐 필요가 없겠다"고 하고는 2학년으로 월반을 시켜주었다. 거기서 일 년 가까이 다니다가 우닝현으로 이사했다.

난징에서 백범의 차남 김신 형과 한 집에 살았는데 형은 중학교 들어갈 나이 임에도 소학교 5학년으로 들어갔다. 우리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으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당시 우리 둘은 중국 성씨로 변성명을 했다. 김신 형은 에 나오는 관운장의 성을 따서 꾸안신, 나는 진을 성으로 해서 천런밍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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