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은하철도 999: 무거운 잿빛 하늘 아래 눈발이 휘날리는 허허벌판 위를 남루한 차림새의 모자(母子)가 바삐 걷고 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이곳에서 가난한 이들은 삶의 궁핍함과 가진 자들의 폭력 탓에 생존 자체가 위태롭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산업재해로 유명을…
인자를 응징한 뒤 부모의 유언이 된 행복한 삶을 위해 월경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80년대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어 많은 한국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 TV 애니메이션 의 첫 회 내용이다.
“이 작품에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윤리적으로 맞지 않은 표현 및 사실과 다른 표기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작품이 발표된 시대 배경 및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발표 당시 그대로 두었습니다.” 1977년 원작 만화를 2021년 복간한 한국판 는 첫 장에 이와 같은 경고 문구를 실었다. 그 말처럼 자식의 눈앞에서 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체를 거두어 박제로 만든 뒤 이를 기념해 만찬을 곁들이는 부자의 잔혹함이나 복수를 위해 살인을 감행하는 10살 어린이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80년대처럼 오늘날에도 아동용으로 분류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실제로 현재 전회차를 볼 수 있는 OTT 서비스 웨이브는 에 15세 관람등급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당시 80년대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조숙했던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데, 돌이켜보면 80년대는 야만의 시절이었다. 학교나 가정에서 체벌이란 이름 아래 벌어지는 아동 구타가 일상이었고 호전적 반공 포스터를 만드는 일도 칭찬받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가 갖는 생명력을 간과하게 된다. 지상파만 한정할 경우 는 80년대뿐만이 아니라 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방송되었다. 이는 가 잔혹동화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이야기를 담았음을 가리킨다. 당장 첫 화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만 하더라도 빈곤, 계급갈등, 이주노동, 산업재해, 가족해체로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문제와 대동소이하다. 어쩌면 현실은 가 보여준 모습보다 더 지옥 같은 모습을 펼치는 중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철이는 부자들만이 가능한 기계인간이 되기를 열망했지만 그가 행성 간 여행을 하며 목격한 것은 기계인간이 되어버린 부자들의 비인간적이고 황폐한 모습이었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영생을 약속하는 돈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을 상실한 화폐인간이 곳곳에 차고 넘친다. 돈을 신분인 것처럼 착각하고 돈을 위해서라면 신의를 버리는 일들이 당연지사처럼 되고 말았다.
1938년생 마츠모토 레이지는 전범국 일본의 패망과 이후 극심한 사회빈곤, 그리고 한국전쟁 특수로 빠르게 고도성장한 일본 사회가 야기한 여러 사회문제를 목도하며 이를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에 녹여냈다. 그 자체로 윤리적 결단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웃나라 한국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짙었다. 현재 한국에서 40대는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평가받는다. 진보가 노동·젠더·인권·환경·인종에 대한 특정한 이념적 지향이라면 가 미쳤을 영향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선잠을 깨워가며 이해하기도 버거웠을 내용을 빠짐없이 챙겨보던 그 아이들이 지금의 40대이다. 를 보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경험은 소중했다. 그렇기에 지난 2월 20일 들려온 마츠모토 레이지의 부고 소식에 적잖이 놀랐다. 그의 명복을 빌며 덕분에 유년기 소중한 추억을 더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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