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세기 중반까지 조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가 조선과의 통상에 관심을 둔 것은 1854년 페리 호 등 미군 함대를 일본에 보내 평화리에 미일조약을 체결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조선 조정은 외부 세계와의 교역을 엄격히 금지하는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청나라가 조선의 개항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조선이 개항하면 조선에 재한 지배권을 잃어버릴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청나라는 조선이 계속 쇄국정책을 고수하면서 청나라와의 전통적인 조공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1866년 7월 평안도
미국은 19세기 중반까지 조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가 조선과의 통상에 관심을 둔 것은 1854년 페리호 등 미군 함대를 일본에 보내 평화리에 미일조약을 체결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조선 조정은 외부 세계와의 교역을 엄격히 금지하는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청나라가 조선의 개항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조선이 개항하면 조선에 재한 지배권을 잃어버릴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청나라는 조선이 계속 쇄국정책을 고수하면서 청나라와의 전통적인 조공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일본이 1894년 7월부터 1895년 4월까지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조선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은 엄격한 중립을 유지했다. 일본을 견제하거나 한반도 침략을 제어할 어떤 의지나 행동도 보여주지 않았다. 1900년 일본주재 조선 공사가 동경의 미국 공사 알프레드 버크에게 미국이 서구 열강들이 조선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하는데 앞장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버크 공사의 답변은 냉담했고 종래의 내용을 반복했을 뿐이다.영국이 1902년 1월 영일동맹을 통해 일본에게 조선에 대한 특권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만주에서 러시아의 단독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제국주의 열강과의 협조 하에 조선 지배뿐 아니라 중국 분할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과 영국은 교섭을 거쳐 1902년 1월 30일 영일동맹을 체결했다. 이에 대항해 러시아는 3월에 러시아-프랑스 공동선언을 발표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 밀약에 이뤄진 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구체적 조치인 을사늑약을 조선에 강요한 것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과 한통속이 된 제국주의적 야욕을 채우는 짓을 한 셈이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후 3·1운동에 한민족이 일본의 엄청난 탄압을 받는 것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일본 편을 들었다. 미국은 1945년 해방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을 때 이 밀약을 감안해 한반도, 특히 독도 문제 등을 일본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준 것으로 추정된다.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맺어진 뒤 일본은 같은 해 8월 제2차 영일동맹과 9월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반도 지배권을 미국 등 세계열강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66-70.). 이 조약으로 미국·영국뿐만 아니라 패전국 러시아도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함으로써 일제의 한국 지배가 국제적으로 확인되었다.
거기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1904년 러·일 전쟁을 앞두고 일본이 미·영의 대기업들로부터 전비 차관을 받도록 주선했고 미국은 1905년 러·일 전쟁 처리를 위한 포츠머스 회담에서 조선과 중국을 배제하는 전략을 썼다는 등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한일전 선발' 일본 매체는 양현종 예상... 이번에도 왼손투수가 중책 맡나'한일전 선발' 일본 매체는 양현종 예상... 이번에도 왼손투수가 중책 맡나 프로야구 월드베이스볼클래식 WBC 유준상 기자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기업 자유 위축'...가격 부당 인상해도 형사처벌 바로 못한다'기업 자유 위축'...가격 부당 인상해도 형사처벌 바로 못한다 독과점 기재부 공정거래법 기획재정부 조선혜 기자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윤석열식 한미 군사훈련, 북핵 능력만 고도화시켜''윤석열식 한미 군사훈련, 북핵 능력만 고도화시켜' 경기중부_한반도_평화행동 정전_70년 이민선 기자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양양 실종 선원, 일본서 숨진 채 발견…3개월 만에 가족에 인도 | 연합뉴스(양양=연합뉴스) 강태현 기자=강원 양양군 해상에서 조업하던 중 실종된 강원도 어업인의 시신이 일본의 한 해안가에서 발견돼 약 3개월 만에 ...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