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어머니와 두 남동생, 어린 아들이 행방불명된 ‘행방불명자’ 가족이다. 정부로부터 5·18 당시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은 84명 중 일가족은 김씨 가족이 유일하다.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내 행방불명자 묘역에 마련된 김금희씨 가족들의 가묘. 김씨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어머니·형제·아들 등 일가족 4명을 잃은 후 현재까지 이들의 행방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email protected]강산이 네 번 넘게 변할 동안 이 말을 수천만 번쯤 되뇌었다. 가족 4명을 하루아침에 잃었지만 돌아오는 건 “가족을 팔아 보상금을 받으려 한다”는 손가락질이었다.
지난 12일 전남 무안군의 한 마을에서 만난 김씨는 날이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는 몸이 불편한 남편 박병식씨가 누워 있었다. 김씨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오고 있다.부부의 삶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 5월. 김씨의 친정 식구들은 당시 고향 무안을 떠나 경기 고양군 벽제읍과 의정부시 등에서 살았다. 공장에 다니던 김씨의 막내 여동생이 병을 앓다 5월10일 숨지자 어머니와 두 남동생은 장례를 위해 무안으로 내려왔다. 김씨 일가족이 광주역에 도착할 무렵, 광주는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의 강경진압으로 시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었다. 5월20일 오전에는 3공수여단이 열차를 이용해 광주역에 도착했다.
경찰들이 집과 마을을 수시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가족들이 광주에 가지도 않았다’고 말하라며 김씨와 남편, 마을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리고 협박과 회유를 일삼했다. 김씨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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