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스릴 넘치는 운전 에세이 손화신 지음
맛있는 음식과 용돈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 명절이면 내 시선을 사로잡은 TV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그건 우습게도 고속도로 정체 상황을 전하는 뉴스였다. 느리게 움직이는 수 천 대의 차들이 차곡차곡 쌓인 회색 화면. 그 앞에 앉아 종일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 있으면 어떤 기분일지, 겨우 들른 휴게소에서는 무엇을 먹을지, 지난한 시간 끝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곤 했다.
직장마저 KTX로 오가다 운전자의 삶에 닿은 건 한참 후. 문득 면허가 생기면 한 뼘 더 어른이 될 것 같았다. 필기와 기능, 가슴 떨리는 도로 주행을 거쳐 '법적으로 운전 가능한 사람'이 되자마자 써보지도 못한 어른의 자격증이었지만.그러다 배우자와 하얀색 중고 SUV가 등장했다. 뒤늦게 당도한 낯선 운전의 세계에 들뜬 것도 잠시, 그 곳은 총탄이 날아오는 전쟁터 한복판이었다. 보이는 건 전부 외제차 뿐인데 꽉 낀 도로에서 어떻게 차선 변경을 하라는 건지. 다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고 싶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나 탈걸! 운전을 왜 해 가지고!'세상에, 이런 무시무시한 도로 위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운전이란 '내가 주체가 되어 하는 주도적 행위'로 그날의 날씨와 음악과 계절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라 정의 내리고, 맵고 짜서 입안이 얼얼하다가도 끝내 달콤한 맛을 건네준다며 즐거워한다.
주차 공간도 없이 덜컥 친구에게 300만 원에 경차 '백호'를 데려온 첫 날 밤, 저자는 살면서 가장 피하고 싶은 서울 주택가의 주차 지옥을 맞닥뜨린다. 내 차 한 대 누일 작은 땅 없어 서러운데, 갓 면허만 쥔 올챙이에게 비좁은 골목길은 그 자체로 공포 영화. 차 빼라고 '호출'했던 차주인에게 운전을 맡기는 비참함을 하늘도 아는지 비까지 내린다. 단속 카메라의 매서운 눈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소심함을 드러내고, 정비소에서 가까스로 바가지를 모면하며, 긁고, 부딪히고, 심지어 빗 속에서 역주행하는 우당탕탕 운전 일기를 따라가다보면 나의 무모했던 지난 날이 포개져 절로 손에 땀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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