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급식비로 음악 CD를 사 모으곤 했다. 작은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면 배가 고팠지만 그렇게라도 좋아하는 밴드들의 앨범을 가질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때 산 앨범들은 대부분 자우림과 일본의 라르크 앙 시엘(L'arc~en~ciel)의 것이다. 당시 나는 자우림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파애', '안녕, 미미', '새', '...
고등학교 때 급식비로 음악 CD를 사 모으곤 했다. 작은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면 배가 고팠지만 그렇게라도 좋아하는 밴드들의 앨범을 가질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때 산 앨범들은 대부분 자우림과 일본의 라르크 앙 시엘의 것이다.
자우림이 없는 평행우주의 내 인생을 상상해 보면, 한국어로 된 노래 중 앨범마다 내 마음을 읽어준 듯한 느낌을 주는 가수를 찾을 수 있을까 싶다. 그곳의 나는 더 고독하고 쓸쓸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24년을 함께한 자우림은 내게 표현 그대로의 '인생 밴드'인 셈이다.하지만 나는 주로 소도시나 외국에 살았고 늘 시간이나 돈 중 하나가 없었기 때문에 자우림 콘서트에는 대학 때 한 번밖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연말에는 여러 모로 무리를 해서 드디어 공연장 1층 R석에 엉덩이를 붙였다.보컬의 멘트에서도 절절한 진심을 느꼈다. 세상에 분노하고 사람들의 상처에 아파하는 마음. 그만큼 세상과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 그게 진심인 데다 흘러넘칠 정도로 크다는 건 그곳에서 그를 처음 알게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자우림은 우리나라 밴드이니 2n년째 현역인 걸 자연스레 알았지만 라르크 앙 시엘은 근황이 어떤지 궁금해 재작년쯤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아주 깜짝 놀라버렸는데, 그들 또한 여전히 활발하게 공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들이 어떤 자리를 목표로 했다면 지금껏 사랑 받으며 그 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순간순간의 열망에 따라 할 수 있는 선택들을 해오지 않았을까.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이 그들의 신념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 열망의 순수함이 은연중 전해지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음악도, 문학도, 아무리 닿으려 애써도 닿을 수 없는 것에 손을 뻗길 반복하는 일일 것이다.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이 만든 기준에 닿지 않아 괴로워 하고, 가져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막연히 그리워하고, 속속들이 보면서도 깨지 못하는 한계에 숨막혀 하는 일.그렇다면, 스스로 좌우할 수 없는 결과에까지 고통받는 건 어리석다. 그 즐거움을 최대한 누리는 게 현명하고 생산적이다. 만약 나라는 사람의 서사가 누군가에게 닿아 영감이 되고 그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이유도 나만의 길을 나다운 색깔로 만들어왔기 때문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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