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온갖 애환이 담긴 인천 십정동 산동네가 나한테는 처음부터 낯설지 않고 정겹게 다가왔다. 한국여성민우회 문화부에서 활동하다가, 1988년 5월 해님방 2주년 기념잔치에 인형극을 공연하러 온 것이 열우물 동네 십정동과의 첫 만남이었다. 해님방은 한국여성민우회의 특별사업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해 총회 ...
서민들의 온갖 애환이 담긴 인천 십정동 산동네가 나한테는 처음부터 낯설지 않고 정겹게 다가왔다. 한국여성민우회 문화부에서 활동하다가, 1988년 5월 해님방 2주년 기념잔치에 인형극을 공연하러 온 것이 열우물 동네 십정동과의 첫 만남이었다.
집을 쪼개고 구조를 바꿔 세입자를 들이는 집도 늘었다. 시장도 생겼다. 아래층을 상가 건물로 지은 시장연립을 중심으로 야채가게며 생선가게, 고깃집, 기름집, 양품점 등 온갖 가게들이 들어섰다. 야채며 곡식을 파는 상회며 방앗간, 그리고 약국이 두 개씩 들어섰고, 정육점은 한 때 세 개나 있었다. 내가 간 이듬해던가, 불이 나 문을 닫았지만 솜틀집까지 있었다.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저임금에 하루 열 두 시간, 열여섯 시간을 일하며 잔업과 철야를 일삼던 당시 노동환경의 영향이 크겠지만, 덩달아 부업시간도 길었다. 아침에 아이 학교 보내고 시작해서 남편이 돌아오는 밤 아홉 시, 열 시까지 짬짬이 집안일 하는 시간을 빼고는 내내 부업을 한다는 여성도 많았다. 리본 만들기, 볼펜 조립, 인형 눈 붙이기, 구슬 꿰기, 실밥 따기 등 하청에 하청을 거쳐서 개당 1~5원짜리가 된 일거리는 종일을 해도 한 달 수입으로 고작 아이들 간식거리 살 돈 정도 손에 쥐게 될 뿐이었다.
해님방 여성들은 또 씩씩했다. 해님방이 공사를 하거나 이사를 할 때 짐을 빼고 나르기 위해 인부를 따로 부르지 않았다. 크지는 않았지만 작은 농 하나를 혼자서 들고 나른 여성도 있었다. 해님방 운영 기금 마련을 위해 봄 가을로 했던 헌 옷 바자회나 딸기잼, 유자차 만들기는 익숙하게 해서 이력이 쌓였고, 격 년으로 열었던 일일주점도 선생들이며 자원교사, 공부방 졸업생 등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긴 했지만 거침없이 주방일을 치러냈던 엄마들 덕택에 운영이 가능했다. 놀이방 자모회, 공부방 자모회라고 해서 한 달에 한번, 정기모임을 하며 공부도 하고, 공부방 운영이나 동네 일에 대해서도 의논했는데, 씩씩하니 나서서 해결해 낸 일도 많다.
침을 뱉은 아이들이 목소리가 갈라지고 목이 붓는 등 통증을 호소하고, 억지로 침을 뱉다 쓰러진 아이까지 있어서 자모회에서 대책을 의논하고 함께 나섰다. 우선 파출소에 신고했는데 변화가 없어서 침 뱉기를 하는 가게들에 여럿이 항의 전화를 하고, 단체로 찾아가기도 해서 1989년 봄, 동네에서는 침 뱉기 하는 곳을 없앴다. 그리고 돌아보면 해님방 여성들은 저 마다의 재주가 있었다. 여름이면 이웃끼리 바람길 골목 그늘진 계단참에 돗자리 깔고 부업을 하다가 점심으로 내오는 국수며, 있는 반찬으로 만든 비빔밥은 왜 그리 맛있던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나는 밥을 많이도 얻어먹었다. 해님방 기금마련 일일주점의 주방장은 그들 중에서도 제일 솜씨 있는 사람이 맡았으니, 파전이며 골뱅이소면이며 안주들의 맛은 보증수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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