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이혼해유!' 75세 할머니가 평생 처음 용기를 냈습니다 마을한글학교 이상자 기자
나는 두 마을에서 수업한다. 대개 '마을학교'는 교사가 '리' 단위 마을로 찾아가서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같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한다. 그런데 이곳은 여러 면 소재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공부하는 학교다. '리' 단위 마을에 마을 학교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마을 학교가 있어도 동네 사람들에게 글 모른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 먼 곳으로 공부하러 오는 분들이 모인 학교다."내 소개를 워떻게 말해야 할지 물러유. 선생님."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자기표현을 해 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살면서 학교를 못 다닌 탓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표현을 못 하고 꾹꾹 참아왔던 분들이 아니던가."내가 장사를 했는디 돈을 많이 벌었슈. 이제 장사 그만 뒀슈. 평생 글 물러 답답한 거 배우고 싶은 참에 우리 동네에 마을 학교가 생겼지 뭐유. 너무 좋았슈. 그런디 동네 사람들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한 줄 알거든유.
부리부리한 눈이 매력적인 김 학생이다. 버스 시간도 한 시간에 한 번씩밖에 없다 했다. 그것도 곧장 갈아탈 수 있는 게 아니라 30분 기다려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어 학교에 오는 날은 하루시간을 다 사용한다고 했다. 이분 말을 듣더니 모두 말문이 터졌다. "난 식당을 했슈. 반찬이 맛있다고 장사가 증말 잘 됐는디, 그땐 외상을 많이 했지유. 그런디 내가 글을 물러서 떼인 외상값을 가마니로 담으면 그 돈이 한 가마니는 될 거유. 외상값 갚으러 와두 글 물르는 거 알고 들 주고 그랬다니께유. 내가 글 알었어 봐유. 치부책에 다 적어놨겄쥬. 그러면 속여 먹었겄슈? 그래서 내가 지금이래두 글 배울라구 왔슈. 죽더라두 글 알구 죽을라구유.""난 울 어머니가 학교 보낼라구 책 사 왔는디 할머니가 지지배를 뭐 할라구 가르치냐구, 내 책을 글쎄 불 때는 아궁이에 쳐늫구 불 질러 버렸슈. 활활 잘두 타더라구유, 난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슈. 할머니가 얼마나 밉던지유. 워떻게 손녀 배울 책을 아궁이에 쳐 늫는대유. 그런디 엄니가 날 학교 보낼라구 할머니 몰래 또 책을 구해 왔거든유. 이번에도 여지없이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싸질러 버렸다니께유. '지지배는 집에서 일이나 가르쳐서 시집보내라.
나이 열일곱에 시집와서 칠십 다섯 되도록 일한 것도 많은디 일이나 허래유. 글쎄, 월매나 속이 터지던지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슈. 아무래도 공부는 허야 것더라구유. 벼르고 별러 날 잡았쥬. 가슴이 두방맹이질 하는디 작심허구 영감에게 말했슈. '공부 뭇허게 허면 나랑 이혼해유! 아주 오늘 담판을 져유.' 결국 내가 이겼슈. 그래서 여기 공부하러 온 거유. 남편에게 맨날 죽어 사는디 워디서 그런 오기가 생겼는지 말해놓구 나두 놀랬다니께유."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의 학생들은 버스로 오는 분이 3분의 2, 걸어오는 분이 3분의 1이다. 이분들이 거의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사철이 되면 결석도 한다. 그렇지만 학구열이 높아 수업 시간의 집중도는 고3 수험생 못지않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동생활을 처음 해보기 때문에 더러 의견이 달라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서로 나누고 베풀고 정이 많으시다. 모두 친형제지간처럼 아끼고 배려한다. 일반 학생들보다 우정이 끈끈하다. 아마도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모두"뭇 써 유우" 하신다."그럼 내가 먼저 말해 볼게 유.""어제 영감님이 방아를 찧었슈. 요새는 맛있게 먹으려구 그때그때 집에서 먹을 것은 가정용 기계로 방아를 찧어유. 그런디 이번에도 방아를 찧어서 아들딸에게 부칠 거래유. 영감이 방아를 찧어서 자루에 담아 묶어 놓길래 내가 배운 걸 생각해서 글을 써 보기로 했슈. 꺼멓고 굵은 펜을 가져다 자루마다 이렇게 썼슈. '1 아들 찹쌀, 2 아들 찹쌀, 1 아들 멥쌀, 2 아들 멥쌀, 1 딸 찹쌀, 2 딸 찹쌀, 1 딸 멥쌀, 2 딸 멥쌀, 현미쌀' 이렇게 유.온 교실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한참 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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