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김재수씨는 고향인 강원도 고성의 제진에 살다가, 한국전쟁 중 1.4후퇴 때 주문진으로 피난 오게 되었다. 종전 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제진이 민통선 안쪽에 포함되는 바람에 간성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어선은 군대에 가기 전부터 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60년대 간성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배 타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일이 많지 않았다.
납북 사건은 독도 쪽으로 오징어바리를 다녀오고 나서 명태조업을 나갔다가 일어났다. 그 당시는 어선에 전자장비 없이 나침반 하나에 의존해 운항할 때라, 배의 위치는 육지에 있는 산 모양을 보고 대충 가늠했다고 한다. 납북되던 날 대동호는 육지의 산 모양으로 볼 때 제진 앞 바다 쯤이었다. 김씨를 비롯한 선원들은 평양에 억류되는 동안 '남한으로 보내 달라'고 단식투쟁도 벌이며 항의했다고 한다. 그러자 북한 관리자들은 그곳에 있던 열한 명의 선장을 별도의 여관에 수용하여 남한으로 돌아올 때까지 다른 선원들과는 격리시켜버리는 조치를 단행했다고 한다.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북한 당국은 '좋은데'라며 만경대, 대동강 등을 구경시키기도 하고, 트랙터 공장과 비료공장 같은 곳을 데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북한에서 포로 같은 생활을 보내던 어느 날, 지도원들로부터 '내일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중에 귀환 소식을 들어서 너무도 기뻤지만, 혹시라도 갑자기 그들 마음이 바뀔까 봐 기쁜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인원이 많아 조사받을 때는 어딘가로 불려가는 선원들도 있었지만, 김씨는 경찰서 내의 두세 평 되는 조사실로 갔다. 조사실에 들어가면 수사관들이 대여섯 명 있었는데 소속이 해군, 정보부, 경찰 등 전부 다른 것 같았다고 한다. 고성경찰서에서의 조사는 약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이어졌고, 조사가 끝난 뒤에는 배별로 각자의 선적지로 이동했다. 당시 조사가 끝난 뒤 선장들만 구속되었고, 김씨는 속초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된 채 검찰과 법원을 오가며 검찰 조사와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친척이나 친구들, 지인들은 슬슬 김씨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김씨 역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또다시 큰 화를 당할까 봐 조심하며 생활해야 했다. 어디를 가든, 심지어 배를 탈 때도, 언제 나갔다, 언제 돌아올지, 어디로 가는지 등등 모든 내용을 항상 경찰서에 신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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