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장벽의 도시 ep2] 어린이는 지금 당장 어디에서 놀아야 할까요? 📝 기사 보기│👉 ▶더 많은 영상을 보려면 유튜브 [이런 경향]👉
지난달 23일 경기 성남시의 한 도서관에서 만난 9세 예은이는 한껏 들떠 있었다. 나무 막대로 직접 만든 장난감을 자랑하며 실내를 누비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예은이의 작품은 도서관 내에 자리한 어린이 작업실 ‘모야’에서 탄생했다. 단추, 털실, 병뚜껑, 글루건, 드라이버 등 100여종의 재료와 공구를 갖춘 곳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라’고 지시하는 어른도 없다. 143㎡의 널따란 라운지에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비밀 이야기를 소근댔다. 채율이처럼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이곳은 지난해 8월 개관한 사립 공공도서관 ‘라이브러리 티티섬’이다.12~19세 어린이·청소년 중심의 도서관을 지향하며 설계 때부터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전체 공간의 절반가량이 12~19세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12세 미만도 전체의 15%나 된다. 티티섬의 정체성은 도서관이면서 동시에 놀이터다.
“학교 끝나면 물이나 간식을 사서 친구들이랑 앉아 있어요. 카페보다 싸고 눈치도 덜 보여요. 시원하고요.” 윤아는 친구들이랑 수다 떨 때가 제일 즐겁다. 문제는 그럴 공간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집 근처엔 놀이터가 없고, 학교 앞에 잠시 쉬다 갈 분식집이나 문구점도 없다. 근처 여자중학교도 같은 사정이다. 편의점 점원은 “여기 손님은 거의 다 근처 초등학생, 중학생”이라면서 “학원 가기 전에 여기 앉아서 뭘 먹는다”고 했다. 부산 동구 A동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현서에게 동네 소개를 부탁했다. “일단 가파르고, 그다음엔 놀이터가 별로 없어요.” 아찔한 경사 위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A동은 아파트가 드물어 놀이터도 귀하다.한 동네에 사는 윤아가 역 근처 노래방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이, 현서는 체육공원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는다. 도보로 20분 걸리는 체육공원은 현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동네 유일의 공간이다.
를 쓴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공놀이, 물놀이 등 놀이 욕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소통과 교류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여전히 많은 놀이터들이 유아 중심으로 조성돼있다”라고 지적했다. 공간 분배의 의사결정에서 어린이는 후순위로 밀린다. 놀이터 부족·부실이 ‘땅이 좁은’ 까닭만이 아닌 것이다. 최근 시후네 아파트는 안 쓰던 테니스장을 주민운동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시후에겐 희소식이었지만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구기종목과 고성방가 금지, 6시 이후 운동 금지 같은 이용수칙이 새로 생겼다. 송씨는 “사실상 아이들의 출입을 막은 셈”이라 말했다. 부지면적 18만㎡의 광활한 아파트 단지이지만 아이들이 맘 편히 뛰놀 공간은 없었다.한국의 아이들이 충분히 놀지 못하는 것은 과도한 학업 부담 탓이기도 하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9~17세 어린이 중 약 70%가 평소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놀 시간이 없는데 놀이터가 무슨 소용이 있냐는 의문을 가질 법하다.
최 박사는 그 까닭을 “시간을 모으는 공간”, 즉 놀이터에서 찾는다. 그는 “저마다 파편화된 아이들의 시간을 모으려면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경로 가까이에 놀이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채아와 민준이가 사는 지역은 사교육 열기가 높으면서도 어린이 보행 환경·놀이 공간이 비교적 잘 조성된 곳이다. 채아와 민준이는 학교-학원-집을 오가는 10분 안팎의 동선 사이에 각각 5곳 이상의 놀이터를 알고 있고 그중 맘에 드는 2~3곳의 놀이터를 자주 찾는다. 채아는 학원에 가기 전 잠시 짬을 내 학교 앞 놀이터에서 논다. 민준이 역시 학원과 학원 사이 남는 시간을 가까운 공공 놀이터에서 보낸다. 친구와 약속을 따로 잡을 필요가 없다. 각기 다른 시간에 짬을 낸 아이들이 놀이터에 있기 때문이다. 놀이터는 일단 가면 친구를 찾을 수 있는 ‘제3의 장소’인 셈이다.
도시가 아이들을 ‘예스 키즈 존’에 가두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씨는 “장애인이 시설에만 살기를 종용하듯 어린이도 키즈 카페나 학원 같은 키즈존에 격리해 두려는 사회”라고 말했다.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예원이는 “어릴 때 차별받은 느낌 때문에 가거나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안전을 위해 노키즈존을 만든다는 어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어린이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더 쉽고 비용도 적게 들어서 만드는 것 같아요.” 한별이의 생각도 비슷하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닐까요?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에서는 어린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울면 방해되니까요.”하은이는 어른이 돼 식당을 운영할 경우 어린이 안전사고가 나더라도 노키즈존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어린이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거잖아요. 충분히 실수할 수 있고, 앞으론 그러면 안 된다고 깨우쳐줘야죠.” 설문에 응답한 83.7%는 ‘식당이나 카페 주인이 되어도 노키즈존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했고 47.7%는 ‘성인이 된 뒤에도 노키즈존 시설에 방문하지 않겠다’고 했다. “차별하는 거잖아요. 그런 곳에 가서 그 의견에 동조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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