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노조 활동의 ‘보이지 않는 손’ 맞서 폭로·반성·성찰 2년…다시 선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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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노조 활동의 ‘보이지 않는 손’ 맞서 폭로·반성·성찰 2년…다시 선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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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창창한 활동가들이 대가 없이 자신을 ‘갈아 넣는’ 활동을 멋있다고 여겼지만, 이제 그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안다. 특정 방식으로 사람을 개조하려는 것이 폭력적인 일이라는 것도. 그리고 운동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2014년 어느 날, 이가현씨는 휴대전화를 꺼둔 채 자취를 하던 부천시 역곡동 집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서울 방향 열차에 탔다. 중간에 환승하고 방향을 틀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탄 뒤 다른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3가지 이상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로였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난 7월25일 가현이들은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만든 ‘언더조직 조직문화 인터뷰집’을 내놓았다. 언더조직을 경험했거나 그 주변에서 활동했던 21명을 인터뷰했다.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 “조직에서 정한 남성운동가 상을 모두에게 몰아붙이는 문화” “오로지 운동의 도구로써 대상화하는 태도” 등 운동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털어놓은 이유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이 경험마저도 언젠간 성장의 토대로 삼기 위함”이라고 했다.“알바 접고 집회에 사람 데려오라는 언더조직…희망이 안 보였다” 같은 해 운동을 시작한 두 가현은 알바노조에서 만났다. 당시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이란 구호를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청년들로 이뤄진 알바노조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현실을 폭로했고, 노래를 지어 부르거나 발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노동 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 주목받았다. 알바노조에선 이름도 성도 같은 두 사람을 구별해 부르기 위해 출신 학교 이름을 따 28세 이가현을 서가현으로, 27세 이가현은 가가현으로 불렀다. 이들을 ‘가현이들’이라고 부르는 일이 늘었다.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하 조직이란 뜻처럼, 언더조직에 함께하자는 제안은 비밀스럽게 다가왔다. 서가현은 같은 학교의 활동가에게 제안받았다. 2013년 가을이었다. “정말 한 줌의 사람들이긴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 조직이 있어. 혁명가의 삶을 사는 거야.” 휴대전화를 끄고 학교 뒷산에 올라가 시작한 대화는 2~3시간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언더조직은 대중운동을 하는 공개된 운동 단체의 배후에서 활동가들을 관리한다. 중요한 활동 방향에 대해선 조직원인 활동가에게 크고 작은 지시를 내린다. 교육도 한다. 학생운동 역사, 러시아와 프랑스의 혁명사, 조선공산당사나 노동법 등을 공부한다. 이미 오래된 학생운동의 교재를 읽는다. 가가현은 알바노조 활동은 이어갔지만, 언더조직 활동은 오래 안 했다. 그는 2015년 여름, 1년 남짓 이어온 언더조직 활동을 그만뒀다. 언더조직 담당자와 평행선을 그린 면담 끝에 결정했다. 운동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사생활까지 통제당하는 게 힘들었다. 후배들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자 ‘권위를 가지고 알려줘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후배를 대하는 태도가 ‘물렁하다’는 것이다. “너는 왜 그렇게 권위가 없니.” “왜 너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려고 하니.” 주로 받은 지적들이다.

서가현은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이런 남성중심적 운동 방식과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서가현이 여성주의를 처음 접한 건 대학 초년생 때였지만 그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건 다른 활동가들과 여성주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토론하면서부터다. 자신을 비우고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운동과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라는 운동. 여성주의는 달랐다. 서가현은 2017년 말 A당을 탈당해 페미니스트 활동에 집중했다. 2017년 여름 어느 날에는 언더조직과의 선도 끊겼다. 그저 “이제 없대” “이제 안 한대”하는 말만 들었다. 평생을 함께한다는 혁명조직이 너무 갑작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듯 사라졌다. 서가현과만 선이 끊긴 것인지, 정말 조직 자체가 사라진 것인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너무 많이 노출돼 사라졌다는 이야기만 돌았다.

폭로가 쉬운 건 아니다. 언더조직의 존재를 알리는 건 자기 고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가현에 이어 서가현도 글을 올렸다. “언더조직에 대한 글을 올린다는 건 나도 그곳에 가담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 폭로가 있고 나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지의 등에 어떻게 칼을 꽂을 수 있냐’는 반응도 접했어요. 언급된 조직의 관계자들은 선을 그었어요. 이대로 가현이가 혼자 화살을 맞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글을 따로 올렸어요.” 시간이 흘렀다. 가현이들뿐만 아니라 언더조직을 경험한 이들이 새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알바노조 1기 위원장을 지냈던 구교현씨는 언더조직을 폭로했던 가현이들에겐 선배 운동가이자 대립한 상대였다. 구씨는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폭로 당시에 대해 “지금 와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정이었다”며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상처로만 남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대와 문화, 삶의 방식이 바뀐 상황인데, 그런 변화에 운동 조직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 했던 것 같다.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소수의 리더들이 운동을 주도하는 것이 변화된 시대에 맞지 않았던 방식인 것 같은데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잘 이뤄지지 못하면서 새롭게 운동에 참여한 분들과의 충돌과 갈등이 있었다.” 지금도 언더조직이 있을까. 그는 “그런 형태의 운동 문화와 구조는 큰 비판을 받았고 어떤 면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를 고수하면서 할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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