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책 편지]삶을 먼 산처럼 관조하게 하듯, 나눔의 글쓰기를 할 환자 친구 J에게](https://i.headtopics.com/images/2020/7/10/kyunghyang/9151008509765101585476-1281483291749580800.webp)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초여름 장마답게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지. 창밖엔 밤비가 속살거린다고 노래한 윤동주의 밤, 나는 시인처럼 등불을 밝히지는 않고 어둠을 끌어안고 누워 있었어. 투명 이어폰을 낀 것처럼 뜻 없는 빗소리에 귀를 대고 가만히. 눈 떠보니 새벽 5시네. J도 깨어 있을까. 그대는 가끔 이 시간에 SNS에 짧은 글이나 밀린 사진을 올리곤 했지. ‘벌써 일어남?’ 문자를 보내면 ‘아직 안 잤다’거나 ‘22시간째 깨어 있다’ 했어. 원고 쓰느라 밤을 새곤 하는 그대의 체력이 부러웠어. 한줄도 쉽게 쓰지 않는 사람이라서 좋았지.
저자 김진영 선생님은 철학자야. 독일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소설과 사진에도 조예가 깊어. 한국에서 “무소속자의 삶”을 살았어. ‘철학아카데미’ 같은 인문학공동체나 도서관에서 강의를 했어. 덕분에 나 같은 학생 아닌 중생도 철학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선생님은 공부와 사유가 깊고 언어가 유려한데 단독 저서가 없었거든. 왜 책을 안 쓰세요? 물어보면 웃기만 하셨어. 아마 ‘책’의 기준이 엄격해서 그랬던 거 같아. 한줄도 쉽게 쓰지 않는 사람을 나는 원래 좋아했지. 나의 문우 J. 가까운 친구의 암 발병 소식이 올 상반기에만 세 번째야. 인간의 유한한 삶. 질병은 생의 기본 값이고 언제 겪느냐 시기의 문제라는 것, 책에서 본 내용을 삶으로 증명할 때가 왔음을 느껴. 에서 배운 표현이 있어. 병을 앓는 일이 죄를 짓는 일처럼, 사람들 앞에 서면 어느 사이 마음이 을의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환자의 당당함을 지켜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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