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7일은 정현순씨(69)의 음력 생일이었다. 엄마는 전날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생일이니까 내일은 꼭 집에 오라”고 했다. 정씨는 집에 가지 못했다. 그날 새...
기억하기 싫어서 마음 속 깊이 묻어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한 많은 피해자들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용기를 낸 이는 김선옥씨였다. 그해 김씨는 1980년 5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았고 석방 전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공개 증언했다. 서 검사의 ‘미투’에 이어, 김씨의 증언, 그리고 용기는 이어졌다. 정부 조사단과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피해 신고를 하고 조사에 응한 이들은 어느새 19명으로 늘었다.
정씨는 당시 26세였다. 1남4녀 중 셋째였던 정씨는 상고를 졸업하고 한국전력 정직원으로 일하며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언니와 형부가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맞서 감옥에 다녀오는 것을 지켜봤고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나이였다. 서울 본사에서 일하다 광주 지점으로 옮겨 1년쯤 지난 1980년 5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5월 18일부터 10일간 언니와 함께 녹두서점에서 계엄군에 맞서 광주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시장에서 천을 떼어 와 검은 리본을 만들고 상황이 궁금해 서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는 “그땐 무섭고 공포스러웠지만 내일에 대한 기약 없이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조심스럽게 “강간 피해자가 아닌데 괜찮으냐”고 물었다. 사건 후 ‘맞고 도망가고 숨는 꿈’을 반복해서 꾸며 오래 후유증을 앓았지만 자신의 피해를 ‘작은 것’으로 달래온 사람의 질문이었다. 그는 2시간 이상 이어진 인터뷰 내내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을 때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는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그는 44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조사위 조사를 받을 때도, 지난달 28일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처음 만난 간담회날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도 다시 똑같이 경험이 되면서 눈물이 났다.
2021년 정씨는 가족들이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때 처음 자신의 피해를 진술서에 적었다. 이후 조사위에 41년 만에 신청사건을 접수했다. “생각해봤어요. 왜 지금에야 말하게 됐을까. 그동안 말하지 못한 건 그만큼 무게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억하기조차 싫었던 섬찟한 경험이 내 삶의 근간을 흔들어왔기 때문에요.” 그는 “완주 산골짜기”로 온 이유에 대해서도 “광주를 피하고 싶어서 이사온 것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완주에서 26년째 살고 있다. 그는 또다른 한편 “삶을 축소시켜오며 지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목회자를 계속 했으면 더 잘 나갔을 텐데 시골로 들어갔고 시골로 들어가서 인권센터를 계속 다녔으면 또 달랐을텐데 소 키우러 들어가고요. 자꾸 삶을 축소한 것 같아요.”
좀더 빨리 진상규명됐다면 어땠을까. 그는 “국가가 5·18 관련자들에게 보상한다고 하고 그때의 진상을 규명한다고 할 때 성폭력 사실도 넣었으면 삶의 무게를 이렇게 무겁게 안 살았겠지요”라고 했다. 1990년 ‘5·18 보상법’이 통과되면서 정부는 5·18 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보상해왔지만 성폭력 피해 조사는 2020년 ‘5·18 진상규명법’이 통과되면서 처음 본격화됐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보상 신청도 올해 8차 보상신청에 처음 포함됐다.43년만의 ‘진상규명’ “당당해진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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