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 뭐가 되고 싶니?” 선생님이 묻자 사내아이들이 하나같이 소리친다. “대통령이요!” 선생...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선생님이 묻자 사내아이들이 하나같이 소리친다. “대통령이요!” 선생님이 되묻는다.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데?” 사내아이들이 눈만 껌뻑거릴 뿐 잠잠하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다그친다. “대통령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 서울대 법대에 가지. 우리 모두 공부 열심히 하자.” 한 아이가 딴소리한다. “전 장군 될 거예요.” 운동은 만능이지만 서울대 법대를 갈 만큼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는 아니다. 선생님이 멀끔히 바라보다 말한다. “그래. 장군도 좋지. 씩씩하고.” 아이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육사 가서 장군 돼서 대통령 될 거예요.” 선생님이 씁쓸한 표정만 지을 뿐 더는 말이 없다.1980년대 초 학교 교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던 풍경이다. ‘육법당.’ 아이들이라고 눈과 귀가 없을까?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육사 출신 정치군인과 권력에 목마른 서울대 법대 출신 법 기술자가 두 손을 맞잡고 온 나라를 통치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주주의’라지만, 선거는 시늉일 뿐 인민의 이름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에 세습 권력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에다가 그나마 근래에는 선대가 만든 권력균형 체제를 붕괴시키고 사실상 ‘1인 절대군주제’를 만들었다. 러시아연방은 형식상 다당제이고 선거로 대통령을 뽑지만, 주요 정적을 가두고 선거를 치러 정권교체 없는 1인 독재체제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다. 일본국은 자유민주주의 나라지만, 사실상 정권교체 없이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이 종신 집권하고 있다. 주변 나라를 벗어나 아시아만 둘러봐도 선거를 통해 평화롭게 정권을 교체하는 나라는 드물다. 식민주의 유산을 물려받는 대다수 아시아 나라는 군부 쿠데타와 일당 독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걸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정말 놀랍다. 무엇보다도 시민사회가 성장한 덕분이다. 시민사회를 ‘자발적 결사체’나 ‘운동단체’로 동일시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판단이다. 자발적 결사체라도 멸균박멸의 ‘군사 언어’를 휘둘러 사회를 파시즘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운동단체라도 정의구현의 ‘도덕 언어’를 독점해 사회를 경직시킬 수 있다. 현재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것은 바로 이러한 병폐 때문이다.
시민사회를 이렇게 좁게 보면 안 된다.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시민사회를 수천년에 걸친 ‘문명화 과정’의 산물로 본다. 자율성을 가진 개인들이 함께 만든 보편적 시민연대. 이러한 민주주의 이상이 문명화 과정에서 꽃을 피웠다. 엘리아스는 자율적인 개인의 출현과 국민국가의 형성이 짝을 이룬다고 본다. 국민국가는 시민권 제도를 통해 국민을 자율적인 개인으로 만든다. 하지만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관료제라서 항상 폭력을 사용하고픈 유혹에 노출된다. 시민사회는 민주주의 이상으로 이를 조절할 제도를 지닌다. ‘선출 공직!’ 선거를 통해 관료제의 꼭대기에 공직을 임시로 파견한다. 시민사회의 ‘임시파견직’임을 잊고, 천년만년 권력이라고 착각하고 휘두르다간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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