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기가 펄럭이던 운동회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흥분상태였다. 달리기와 줄다리기, 기마전과 오자미를 던져 박을 터뜨리는 게임도 즐거웠지만 잠을 설치며 그날을 기다리...
만국기가 펄럭이던 운동회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흥분상태였다. 달리기와 줄다리기, 기마전과 오자미를 던져 박을 터뜨리는 게임도 즐거웠지만 잠을 설치며 그날을 기다리도록 한 것은 역시 평소에는 먹어볼 수 없었던 군것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투명한 병에 담긴 주황색의 음료는 가히 천국의 맛이었다. 내 눈을 온통 사로잡은 것은 크고 작은 풍선이 줄줄이 매달린 풍선 뽑기였다. 알록달록하고 큼지막한 풍선을 차지하고 싶었지만 내 몫은 늘 아주 작은 풍선이었다. 그때마다 내 눈길은 큰 풍선을 뽑고는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친구들을 향하곤 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 풍선 뽑기에 동참할 수 없던 아이들도 풍선 놀이에 슬쩍 참여할 수 있었다. 풍선을 들고 다니다 시들해진 아이들이 단단한 매듭을 끌러 풍선을 풀어놓으면 푸스스스 소리를 내며 제멋대로 날아가는 풍선을 함께 따라다니며 깔깔거렸다. 60년 전 저편의 풍경이다.
미국의 현대 미술가인 제프 쿤스는 막대풍선으로 만드는 동물 모양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재현해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풍선 개’ 혹은 ‘풍선 토끼’ 앞에 사람들은 오래 머문다. 어찌 보면 유치해 보이는 그 작품을 두고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긍정사회의 체현이라고 평가했다. 매끄럽기 이를 데 없는 표면은 아무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풍선 개’는 어떤 재앙도, 어떤 상처도, 어떤 깨어짐이나 갈라짐도, 심지어는 봉합선조차 없는 그 일관된 긍정의 세계이다. 갈등이나 아픔이나 내면이 없다. 그것은 허구의 세계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해석할 것도 생각할 것도 없는 그 작품 앞에 머무는 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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