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그리고 기각. 아이누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충돌하고 있다. 내가 선주민족 아이누를 처음 만난 건 일본 최북단 마을 홋카이도 사루후쓰무라(猿払村)에서다. 2006년의 일...
내가 선주민족 아이누를 처음 만난 건 일본 최북단 마을 홋카이도 사루후쓰무라에서다. 2006년의 일이다. 1942년부터 이 지역에 일본군 아사지노 비행장이 건설되었고, 한반도에서 수천명의 노동자가 강제 연행되었다. 가혹한 환경에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시신이 매장되었다. 이들의 유골을 발굴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사루후쓰에 모였다. 이 발굴엔 아이누 민족도 참가했다. 아이누는 ‘자신의 땅’에 묻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골의 영혼을 달래는 제사를 올려주기도 했다고, 학문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수천구의 유골을 빼앗긴 아픈 역사도 들려줬다. 한국과 아이누는 유골로 상징되는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최근 선주민족 아이누와 관련된 움직임이 주목을 받았다. “아이누 민족에 관한 과거의 연구 자세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진심 어린 사죄를 표명한다.
일본문화인류학회가 식민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과거의 연구 자세를 반성하고 아이누 민족에게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국내외의 학회가 아이누에게 사죄하는 것은 처음이다. 왜 사죄한 것일까? 일본 정부는 아이누가 선주민족임을 부정하고 전통적인 어업 등의 문화를 금지하는 동화정책으로 오랫동안 차별해 왔다. ‘학문’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차별과 인권 유린은 더욱 잔인했다. 문화와 DNA 연구를 한다는 이유로 유족의 동의 없이 무덤을 도굴해 유골을 수집했다. 아직도 1800여구가 반환되지 않고 있다. 문화인류학회는 이러한 과거의 폭력적인 연구 자세를 반성하고 사죄한 것이다.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학회의 사죄만으로는 아픈 역사를 청산할 수 없다. 권리 회복이 필요하다.아이누 관련 단체는 ‘신의 물고기’라는 아이누 전통의 연어잡이를 허가 없이 할 수 있는 선주권을 인정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4월 중순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현행법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
2019년 일본 정부는 아이누를 선주민족으로 인정하는 ‘아이누시책추진법’을 만들었지만 선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엔에서 일본도 찬성한 ‘원주민권리선언’이 채택된 이후 세계 각국에서 선주권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정부의 자세는 매우 소극적이다. 학회의 사죄와 선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 이것은 일본 사회가 과거사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관한 과제를 남겼다. ‘아이누시책추진법’은 5년간의 실시 상황을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가 바로 그해이다. 기시다 총리는 5월 이후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과거의 국가폭력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과 자세를 확인할 기회이다. 아이누 민족의 선주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일본 사회가 민족 차별 없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지 않을까? 일본이 청산해야 할 과거는 이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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