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진짜 우리 사무실 같아!” ‘뿌리’라는 이름이 크게 적힌 현수막, 책상과 의자, 페미니즘 글귀가 적힌 포스터, 여성학 서적이 놓인 공간을 보고 지현이 말했다.
뿌리는 2021년 중앙대에서 백래시로 폐지된 총학생회 산하 성평등위원회다.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특정 성별만을 위한 사업만 한다” “여성가족부 폐지 여론이 형성되는 추세다”라며 성평위 폐지를 위한 연서명이 올라온 이후 학내 확대운영회의에서 폐지가 결정되기까지 순식간이었다.
지난 23일 오후 8시 서울 용산의 한 전시장. 2021년 성평위원이었던 지현·지원·선빈·마토·새싹이 120평의 빈 공간을 뿌리의 역사로 채우고 있었다. 24일~27일 국제엠네스티 본부와 함께 주최하는 젠더정의 행사를 위해서다.여성혐오와 작별하고 인권친화적 시공간을 연다는 취지의 행사에서 5인은 중앙대 성평위의 폐지 과정과 성취를 담은 상설 전시를 맡았다. 이들은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공간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번 전시는 폐지 이후에도 지속해온 뿌리의 공식적인 마지막 활동이다. 120평의 넓은 전시장. 선빈과 마토는 한 벽면 가득 대자보를 붙였다. 토론과 숙의도, 뿌리 측이 항변할 기회도 없이 성평위 폐지가 결정된 후 대학사회·정치권 등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연대 성명들이다. 2010년 이후 대학들에서 총여학생회가 줄줄이 사라졌지만 그 대안으로 생긴 기구까지 없어진 것은 뿌리가 처음이었다. 현재 중앙대에는 젠더정의를 위한 총학생회 규모의 자치기구도, 총학생회 차원의 반성폭력 사업도 없다. “이 정도면 중앙대 게시판이 다 덮이겠는데?” 마토가 대자보의 양이 새삼 많다는 것을 깨달은 듯 말했다.성평등위 폐지는 이들에게 트라우마와도 같은 기억이다. 당시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성평위원에 대한 신상털기·욕설 등이 저질러졌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학기에 에타가 주요 공론장처럼 여겨지면서 학내 페미니스트나 성평위원에 대한 공격이 유독 많았어요.” 지원이 회상했다. 이날 전시장 한 편에서 이들은 에타의 혐오댓글을 출력해 전시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오히려 뿌리 폐지 이후로 바쁘게 활동해왔다. 중앙대의 상황을 알리고 페미니즘 연대 활동을 벌였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백래시를 겪고 나서도 에너지를 써서 열심히 하는 이 마음은 뭘까. 자주 생각했어요.” 지원이 말했다.이들은 전시를 통해 무기력과 분노의 감정을 갖기보다 “우리 진짜 잘해왔다! 이보다 잘할 수 없다!”는 유쾌한 끝을 맺고 싶다고 했다. 마토는 “성평위 폐지가 오래가는 상처로 남을까 두려웠다”면서도 “이번 전시는 다음 삶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했다. 지현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서로 돌보고 위로 받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중앙대총여학생회총여페미니즘여성학국제엠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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