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이 세 든 건물 4층에 위치한 김민기의 사무실은 극단 대표의 집무실이라기보다는 은거하는 수도자의 토굴 같았다. 91년 학전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기획하고 제작한 각종 공연물 자료와 참고서적이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만한 통로만 남겨두고 천장까지 가득 찼다.
첫 인터뷰 날이었던 지난달 24일 오후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가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 내 관객석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김 대표는 “어색해 미치겠으니 빨리 끝내 달라”며 사진기자를 독촉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74년 카투사로 입대한 그가 처음 배치된 곳은 미군방송국이었다. 비교적 편안한 군 생활을 하던 75년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보안부대에 소환되어 중앙정보부 요원을 만나게 된다. 중정의 학원 담당이라는 자가 그에게 지시한 것은 “노래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노래를 만들면 편안하게 해준다. 지금 제대를 시켜 줄 수도 있다”면서. 김민기의 음반을 압수하고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유신 반대 집회마다 그의 노래가 불리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자, 김민기 자체를 권력 편으로 ‘압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때 김민기가 지은 노래가 ‘식구생각’이다.
김민기는 고향인 익산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농사일을 배우다가 김제를 거쳐 경기도 전곡의 민통선 안에서 소작농으로 5천평 쌀농사를 지었다. 마을의 청년들과 합세해서 거기서 생산된 쌀을 도농직거래로 팔아 마을기금으로 쓰기도 했다. 시인 황명걸은 당시 김민기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의 친구, 쌀장수 김민기/ 영롱한 아침이슬 잔뜩 구두에 묻히고서/ 그가 오고 있다…”“ 아예 농촌 내려갈 때 노래를 잊어버리려고 했지. 아침에 무슨 노래 하나 생각나서 하루 종일 따라붙으면 짜증나잖아. 그런 게 난 얼마나 많았겠어? 기타를 치는 사람, 현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자기 손가락 끝이 무지하게 귀해. 그런데 농사를 딱 시작하는 순간 이게 다 망가지는 거지. 그렇게 지워 버리려고 하다 보니까 지워지더라고 노래에 대한 기억이.”“두가지 다…. 왜냐면, 사람들이 죽었거든. 죽음을 가지고 내가 함부로 묘사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 회고에 따르면, ‘김민기는 앉은 자리에서 뚝딱 명곡 한 곡을 써내는 천재’라고 하던데.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는 원주로 공연 가는 버스 안에서 지었고, 술자리에서, 결혼 축가로 즉석에서 곡을 뽑아내는…. “노래라는 게 ‘말’하고 ‘음’하고의 조합인데, 그 조합관계에서 난 아직도 해결 못한 숙제가 많다고. 근데 어떤 애들은 그걸 뛰어넘어서 다 해결한 것처럼 군다 말이야. 한자말이거나 관제화된 말을 막 쓰면서 거기다 음악을 갖다 붙이면 된다고 생각하고….”“그렇게 말씀하실 건 아니고… 난 미술을 한 사람인데, ‘사각형’이라는 건 그렇게 오래가지를 못한다고. 임시적인 방편이야. 인간이나 자연 어디를 보더라도 직선이라는 건 없어. 어느 시점에서 이렇게 사각형까지 해보자, 이런 거지. 사각형이 자기주장이 되었을 땐 억지가 되기 쉽다고. 에잇… 이제 고문 취조가 막바지까지 가네.”사람들 뇌리 속에 김민기는 저항가요의 전설이었지만 그는 사실 투쟁가를 목청 높이 외쳐 부르게 하는 전사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크럼을 짜고 최루탄을 마시며 그의 노래를 목이 터지게 부를 때나 탁자가 부서져라 군창을 할 때에도, 그는 민통선 안의 폐가를 수리해서 땅을 일구고 묵묵히 농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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