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이 1990년 1차 침투를 앞두고 평양에서 ‘적구화 교육’(남한 사람 만들기)을 받을 때 서울말을 가르친 ‘강사’가 하 선생이었다. 김동식은 1988년 7월부터 1년 동안 적구화 교육을 받은 뒤 서울 사람으로 완벽하게 변신에 성공, 1990년 1차 남파 공작 임무를 마치고 평양에 귀환했다. 적구화 교육을 담당한 강사들은 자진 월북하거나 ‘하 선생’처럼 강제로 납북된 남한 출신이었다. - 북한,김동식,적구화,간첩,납북,남북간첩전쟁탐구
」「 3화."지하당을 구축하라" … 남파 명령이 떨어지다
납북자가족모임이 공개한 사진에는 ‘묘향산 휴양기념 1974’라는 직인이 찍혀 있었다. 1971년 서해상에서 납북된 휘영37호 선원 12명과 72년 납북된 오대양 61, 62호 선원 24명 등 납북 어부 36명의 모습이 담겼다. 서울말 강사가 납북 어부 사실 처음 알아 정확한 이름은 모르고 그저 ‘하 선생’이라고 불렸는데, 그에게 서울말을 배우면서 친해졌지요. 말이 별로 없는 과묵한 성격이었고, 북한에서 결혼해 딸아들을 낳았다는 정도만 알려졌지요. 당시 30대 후반으로 키가 175㎝ 정도로 큰 편이었습니다. 본명·납북 경위 등 하 선생의 신분은 보안상 비밀이었지요. 그가 납북 어부 출신이란 사실은 중앙일보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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