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내가 30년 넘은 칼에 정 주는 이유 과도 1인_가구 정 변은섭 기자
자취만 16년째 '1인 가구 고인물'인 나이지만, 혼자 사는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취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16년차 밥그릇과 국그릇, 대형폐기물 딱지를 붙일 뻔한 위기에서 A/S 기사님의 노련한 기술 덕에 부활에 성공한 12년차 전기밥솥, 인천아시안게임 마스코트로 어쩌다 우리 집으로 들어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내는 10년차 인형들까지, 난 나의 물건들과 함께 산다.
1990년대 전화번호 국번을 두 자리에서 세 자리로 단계적으로 변경하다 1998년 전국적으로 세 자릿수 국번으로 바꿨다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 청주에서는 이미 세 자릿수 국번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이 과도의 나이는 어림잡아도 서른이다. 30년을 살아남은 과도라니, 왠지 여기저기 갖다 쓰기가 송구할 지경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칼을 가는 돌, 숫돌을 집에 구비해두고 날이 무뎌진 칼들을 모아 칼날을 갈아주셨다. 내가 어릴 땐"칼 갈아요~"라는 외침과 함께 동네를 돌며 칼을 갈아주시던 프로 칼갈이 아저씨가 계셨는데... 이제는 몸을 쓰는 게 예전 같지 않으신 아빠는 더 이상 칼을 갈지 않으신다. 칼을 가는 것도 기술이 필요한지라 아빠가 더는 매끈하게 칼날을 세우지 못하게 되면서 아빠의 '방구석 칼갈이'는 폐업 상태다. 아빠의 폐업과 함께 나의 과도도 더 이상 무뎌진 칼날을 세우지 못하고 세월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 과도를 버리고 새 칼을 살 생각은 하지 않는다.칼이야 마트에서 몇 천원이면 쉽사리 구입할 수 있지만, 새로 산 칼이 우리 집 과도의 자리를 메울 수 있을까? 혼자 살 딸을 위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찾아낸 과도를 고이고이 싸매어 딸에게 보낸 엄마의 사랑을, 딸이 무뎌진 칼을 쓰는 게 불편할까 고도의 집중력으로 칼을 갈아주던 아빠의 마음을, 해먹는 요리라고는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이 전부지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끼니를 준비하던 나의 16년의 시간을, 푸르게 날이 선 새 칼이라 해도 대체할 수는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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