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추모묘역공원조성 후,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에 합동추모묘역공원이 조성되었고, 거창사건 추모공원은 별도로 존재한다. 1996년 정부가 받은 함양산청사건 희생자 유족은 732명이었고, 이들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164명으로 파악된다.
"1996년에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지면서 대부분 1세대 유족만 등록을 받았고 이후로 없었다. 이번에 일부 유족들이 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2세대까지 등록을 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정부가 대법원 상고를 했다고 하니 받아들일 수 없다."함양산청사건은 거창사건과 함께,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국군이 공비토벌 작전을 펼치던 중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말한다. 당시 산청군 금서면 가현마을과 방곡마을, 함양군 휴천면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마을 등지에서 민간인 705명이 통비분자로 몰려 집단 학살되었다. 거창사건 희생자는 719명이었다.당시 정부가 받은 함양산청사건 희생자 유족은 732명이었고, 이들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164명으로 파악된다. 이들 가운데 주로 부산에 거주하는 유족들이 일부 산청‧서울에 주소를 둔 유족과 함께 15명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던 것이다.
이들은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민법상 손해배상청구 단기소멸시효인 3년이 지나서 소송이 제기되었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이 끝난 2010년 6월을 훠씬 넘긴 2023년 3월에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등법원 제5민사부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함양산청사건과 같은 거창사건 유족들이 제기했던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파기환송했던 2022년 10월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항소심 재판부는 사망자 본인에 1억원, 생존한 배우자에 5000만원, 부모‧자녀에 각 2000만원, 형제자매에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함양산청사건이 벌어진 지 74년만에 국가배상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정부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는 사실에 대해, 김 회장은"유족을 두 번 울리고 있다. 항소심 판결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상고하겠다고 했다는데, 이해할 수 없다. 유족들이 수십년 동안 싸워 왔는데 또 법적으로 진행을 해야 하니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이번 소송은 '보상'이 아니라 '배상' 청구였다. '배상'은 국가 또는 단체가 위법행위를 저질러 피해를 입혔을 때 상대에서 물어주는 것이고, '보상'은 적법한 행위에 의한 손실이 발생했을 때 해당된다.그러면서 정부가 유족 추가 등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생 회장은"1996년 정부가 등록을 받을 때 대부분 1세대만 해당되었고 극히 일부 2세대가 있었다. 나이 35살 이하 2세대는 등록이 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라며"2세대까지 유족을 치면 1000명은 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얼마 전에 지역구 신성범 국회의원을 찾아가서 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검토 과정을 거치고 행정자치부에도 알아본 것으로 안다. 신 의원은 내년 2월경 관련 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Hamyangsancheong Incident National Compensation Government Appeal Victims' Families Special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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