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희(1896∼1997)는 1915년 6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다. 19세 때다. 길찬록의 ‘사진신부’였다. 27살 연상의 ‘사진신랑’을 실제로 보고 혼인을 거부하려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억지로 결혼했다.
집단 농장서 도시 노동으로…미국 사회서 생존 고투천연희는 1915년 6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다. 19세 때다. 길찬록의 ‘사진신부’였다. 27살 연상의 ‘사진신랑’을 실제로 보고 혼인을 거부하려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억지로 결혼했다. ‘술 문제와 무능함’ 때문에 이혼한다. 두 번째 남편 박대성과도 헤어진다. 박대성이 딸의 대학 진학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천연희는 딸도 아들처럼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숙집 운영을 하다 호텔을 사들일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가 된 뒤 미군 출신 백인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호텔사업과 함께 카네이션 농장도 운영했다. 세 번째 결혼 때문에 한인 교회에 나갈 수 없었다. ‘백인 남성과 결혼한 여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천연희는 남편 사후에도 계속 ‘백인 남성에게 몸을 판 여자’라는 모욕에 시달렸다.한인 여성 디아스포라 연구자 노선희는 최근 출간한 에서 문옥표, 이옥희 등이 쓴 에 나온 이혼 사례 등을 인용한다.
시댁이 있는 경우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의무’를 감당해야 했다. 1914년 이주한 송정윤의 신랑은 한인 1.5세대였는데 알코올 중독, 도박, 폭력 문제가 있었다. 송정윤은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시댁 가족 생계까지 도맡았다. 아들이 미 대륙 대학에 진학할 때가 되어서야 남편과 이혼했다. 송정윤의 아들 알프레드 송은 어머니의 삶을 “희생.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1917년 하와이로 온 선우경신의 남편은 알코올 중독과 도박 문제가 있었다. 남편은 농장에 선우경신을 두고 떠나버렸다. 그녀는 살아남으려고 LA로 이주했다. 두 번째 남편과 함께 미 서부 도시 한포드에서 호텔을 운영했다.
1916년 18세의 나이로 시애틀로 이주한 사진신부 이엘렌의 가족은 대륙의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남편은 소작농이었는데, 돈을 벌어도 땅을 살 수 없었다. 미국의 토지법은 아시아인의 토지 소유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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