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붙이 하나 없는 결혼식 사진... '38 따라지' 남자의 일생 남두용 윤태옥 38선 한국전쟁 윤태옥 기자
한탄강철교 남단, 미군과 소련군이 만나 직접 세웠다는 38선 표지를 돌아보고는 한탄강을 건넜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올라와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졌다. 마침 한탄강 강변에 일찌감치 문을 연 카페가 보였다. 테라스의 테이블에 동반자들과 둘러 앉아 쌉쌀한 커피를 마셨다. 커피 향이 아직 온기를 품고 있을 때 나는 한탄강을 일곱 번째 건너면서 비로소 38선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남두용이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남두용은 1920년 함경북도 경성군 용성면, 지금의 청진시에서 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함경도의 명문 경성고보를 다녔다. 일본인 수학선생의 실력이 형편없어 몇몇이 작당하여 백지 답안지를 내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4학년에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경원선을 탔으니 철원, 연천, 전곡을 지나 한탄강철교 직후 바로 이곳을 통과했다. 첫 번째 38선 통과는 신나는 수학여행이었다. 물론 38선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탈출 자금을 준비하는 한편 남두용은 학도병 생활에 적응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군사훈련과 내무생활에 모범이 되려고 애썼다. 그의 상관은 남두용을 좋게 평가하여 교육 조교로 내심 정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남두용은 전선으로 차출되지 않고 조교로 남을 수 있었다. 남두용은 함경북도 회령의 관동군 보병부대에 배치됐다. 같은 부대에 조선인 학도병은 27명이 있었다. 그렇게 더딘 시간이 흘러 드디어 1945년 8월 15일 그날, 남두용은 두만강 철교의 경비부대 소속이었다. 그는 일본군 병사 신분이었기에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가 된 채 도문역 근처의 수용소로 옮겨졌다. 이후 일본군은 소련으로 이송된다는 소문을 듣고는 남두용은 탈출을 결심했다.
1946년 1월 출발했다. 걸어서 경성까지, 트럭을 얻어 타고 북청을 거쳐 원산까지 남하했다. 불시검문을 피하려고 원산과 성진에서는 노숙을 했다. 경원선은 원산에서 복계역까지만 운행하고 있었다. 이 구간은 화물칸 지붕에 얹혀 갔다. 그 다음엔 다른 세 사람과 함께 걸었다. 얼어붙은 한탄강을 새벽에 건넜고 건넌 지 얼마 가지 않아 미군 초소가 나왔다.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했다. 아직은 38선이 얼어붙지는 않았던 것이다.남두용은 한탄강철교 남단을 일곱 번째 통과하면서 비로소 북위 38도가 운명의 구획선이 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여섯 번이나 무심하게 통과했던 이 지점을 통과하는 것은 이제 특별한 정치적 행위였다. 남으로 가면 본인은 타향의 외톨이였고, 북에 남은 가족은 반동분자라는 불이익을 고스란히 덮어써야 했다.
개전 3일 만에 인민군이 서울로 들이닥치자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고 숨었다. 그런데 대한청년단 성동구 단장이었던 큰 처남이 체포됐고 소식은 두절됐다. 고등학생이었던 셋째 처남은 서울 수복 이틀 전에 친구들과 놀다가 끌려갔고 며칠 후 성동경찰서 방공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마지막 남은 처남도 피난 중에 화롯불 가스에 중독돼 사망했다. 세 아들을 잃은 장모는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세 아들의 뒤를 따라갔다. 남두용은, 고향의 친가는 갈 수 없는 세상으로 막혔고, 그나마 의지했던 처가는 참혹하게 무너졌다.남두용은 유엔군이 곧 북진하여 통일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1950년 12월 정훈장교로 자원하여 입대했다. 북진하면 고향에 부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그의 희망은 깨졌다. 1956년 제대했다. 제대 후에 일생에서 가장 힘든 경제적 곤란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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