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일 서울에 사는 대학생 전현수씨(22)를 부산지법에서 만났습니다. 재판에 출석하기 위...
지난 7월 3일 서울에 사는 대학생 전현수씨를 부산지법에서 만났습니다.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숙소를 잡고 전날 미리 부산에 왔다고 했습니다. 현수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세 차례나 부산지법에 왔습니다. 현수씨가 법원에 온 건 재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국민참여재판의 그림자 배심원으로 재판을 ‘하기’ 위해서였죠.
배심원 선정 과정에 대해 들으면서 ‘왜 내 주위에는 배심원이나 배심원 후보로 선정된 이들이 없을까’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관련 통계를 확인해 보니 쉽게 그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국민참여재판 자체가 많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배심원도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재판과 다르게 보통 하루 안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하루 동안 모든 증거조사와 증인신문을 마치고 배심원 평결에 이어 재판부의 선고까지 진행되죠. 일반적인 재판은 간단한 사건도 선고까지 2차례 기일로 나눠 진행됩니다. 그래서 하루 안에 끝낼 수 없는 복잡한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사건을 살펴보면, 지난 1월 설 연휴 직전에 밀린 배송을 하던 A씨는 상층부에서부터 엘리베이터를 잡아두고 배송하며 내려오던 중이었습니다. 여러 층에 멈춰 서다 드디어 4층에 엘리베이터가 섰습니다. 50대 남성 B씨가 엘리베이터로 들어서면서 욕을 하고 A씨의 짐수레를 발로 찹니다. A씨는 이런 B씨를 양팔로 밀어 넘어트렸습니다. B씨는 넘어지면서 뒤통수가 땅에 부딪혔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지만, 며칠 뒤 숨졌습니다.검사가 배심원을 바라보면서 진술을 시작했습니다. A씨는 자신의 행위로 B씨가 사망한 것은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상해치사가 아닌 ‘폭행치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발적으로 딱 한 차례 방어적 행동으로 밀친 것이지 상해를 입히려 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양측의 입장을 들은 뒤, 재판부는 쟁점을 정리해줍니다. 이날 사건의 쟁점은 유무죄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해치사나 폭행치사 중 어느 혐의를 적용해야 할 것인지와 어떤 처벌을 내릴지 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미필적 고의라는 게, 어떤 일이 발생할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라는 법률용어인데 언론에서 너무 쉽게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개념입니다.”
경찰과 소방이 작성한 일지를 보면, A씨에게 밀쳐져 뒤로 넘어진 B씨는 머리를 단단한 바닥에 부딪혀 정신을 잃은 듯합니다. A씨가 119에 신고하며 심폐소생술을 했죠. 정신을 차린 B씨는 귀가했다가 자세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구급대원 판단에 따라 병원으로 이송됩니다. 이후 뇌출혈 진단을 받고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사망합니다. 검찰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관리소장에게 B씨와 유족의 관계를 묻습니다. B씨는 술에 취해 다툼이 잦아 가족과 불화가 있었다는 증언을 하죠. 유족이 한탄하는 마음으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피해자 유족의 탄원서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점을 암시하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피해 당사자는 사망했고, 그의 평소 행실은 그가 겪은 피해와 전혀 별개이며, 사이가 좋지 않던 유족의 용서로 피고인의 처벌을 전적으로 감경 해줘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보였습니다.
재판은 검사와 변호인의 최종의견, 피고인의 최후진술로 마무리됐습니다. 검사는 피해자가 욕설을 하고 카트를 발로 찬 것 외에는 추가로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것이 없는데, 가만히 있는 피해자를 밀어 넘어뜨린 것은 방어적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폭행의 고의만 있어도 상해죄 성립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판례를 제시하며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A씨에 대해 감경 요인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양형기준에 따라 징역 3년을 구형했습니다. 다른 그림자 배심원들도 자신만의 판단 근거를 내세워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림자 배심원 20명의 의견을 종합하면 상해치사가 11명 폭행치사가 9명이었습니다. 19명이 대체로 2년~2년 6개월의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형 의견은 한 명이었습니다. 우발적인 사건이고 구호 조치를 했다는 점은 인절할 수 있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가 중대해 엄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대체로 배심원과 재판부의 판단은 일치합니다. 2008년부터 2022년까지 2894건 중 93.6%에서 평결과 판결이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2008년 국민참여재판 시행 이후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이 일치하지 않은 건 모두 186건이었습니다. 대부분 배심원이 무죄 판결했지만, 재판부가 유죄로 판결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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