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백화산 교장바위, 동학의병 최후 항쟁의 아픔

역사 뉴스

태안 백화산 교장바위, 동학의병 최후 항쟁의 아픔
동학의병백화산교장바위
  • 📰 OhmyNews_Korea
  • ⏱ Reading Time:
  • 76 sec. here
  • 8 min. at publisher
  • 📊 Quality Score:
  • News: 51%
  • Publisher: 51%

태안 백화산 교장바위는 동학의병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장소로, 일본군과 관군에 대한 최후의 항쟁에서 만개한 비극적인 역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태안 최후 항쟁, 도살장을 방불할 정도로 처참했다 「아래 글은 문영식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명예관장(태안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의 증언과 설명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동학의병 전쟁 당시 태안읍 관아를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백화산 교장바위 는 선지피로 물들어 글자 그대로 시산혈해였다고 한다. 이 교장바위 부근은 마치 도살장을 방불할 정도로 처참했다고 전한다.」 동학의병 들이 무참하게 학살되다 태안 백화산 (白華山)은 옛날부터 태안군의 진산이며 영산으로 태안팔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 비극적인 장소가 있어, 오늘에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백화산 산기슭에 수많은 동학의병 들이 무참하게 학살되어 천추의 한이 서린 유서 깊은 교장(絞杖, 목 졸려 죽고, 몽둥이에 맞아 죽음)바위가 그 현장이다. 갑오년 10월 1일 동학의병 군이 태안성을 점령하고 처형 직전에 있는 동학도 30여 명을 구출하였다.

그 뒤 일본군과 관병연합군이 태안군내에 진주하여 극악무도하게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에게 맞서고 대항하기 위해 동학의병군은 대오를 편성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출전 준비를 완료하였다. 1894년 10월 15일, 동학의병군은 경이정(憬夷亭)에 모여 보국안민과 척왜창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태안에서 재 기포(起包) 즉 동학의병전쟁에 본격 나섰다. 이때 태안 10월 22일 서산시 해미에서 유진(留陣)하고 일부 병력은 작전상 그날 바로 서산시 운산면 여미벌(餘美坪)로 진군(進軍)하였다. 당진 승전곡 전투에서 대승 다음날 10월 23일 덕포 박인호 대접주와 예포 박희인 대접주가 인솔하는 동학의병군에 합류하여 여미벌에서 집결하니 동학의병들의 사기가 의기충천하였다. 여기서 작전 계획을 세우고 흐트러진 전열을 재정비하고, 10월 24일 당진 승전곡(勝戰谷) 전투에서 일본군, 관군과 접전하여 동학의병전쟁사에서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었다. 그 후 26일에 예산군 신례원 관작리(觀爵里) 전투에서 승전하고, 27일 예산군 역촌 뒷뜰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동학의병들은 수운 최제우 선생 탄신일 10월 28일(음력)을 맞아 덕산군 역촌 뒷고개에 머물러 기도를 드리고 곧 홍주성(洪州城)으로 향하여 홍주성 공격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최신식 무기를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연합작전에 무려 1천여 명의 동학의병군이 무참히 희생되었다. 동학군, 홍주성 전투에서 대패 홍주성에서 대패한 동학의병군은 일본군과 관병연합군에 쫓기면서 11월 7일 해미성(海美城)에 입성하여 항전하다가 패주, 인근에 있는 귀밀성(貴密城)과 저루성(猪樓城)에 합류하였다. 일본군과 관군 1개 소대는 귀밀성을, 2개 소대는 저루성을 오후부터 공격하였다. 여기서도 공방전이 벌어졌으나 동학농민군이 완패하고 말았다. 매현 전투에서 패하고 백화산으로 집결 다음 날인 8일 매현(梅峴)전투에서 또다시 패전하여 재기할 여력을 잃은 채 최후로 11월 11일에 백화산으로 집결하였다. 11월 16일까지 동짓달 설한풍의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 가면서도 끝까지 항전하였다. 동학의병군들은 비록 진퇴양난으로 궁지에 몰렸어도 일본군들에게 투항하지 않았다. 죽을 각오로 의연하게 끝까지 항전하다가 순국하였다. 교장바위 부근, 그야말로 아비규환 특히 백화산 중턱에 있는 큰 바위에서는 동학의병군을 붙잡아다 놓고 목을 졸라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목이 잘린 시체가 쌓이거나 여기저기 흩어졌다. 일본군들은 시체를 일일이 헤쳐 보면서 혹 산 사람이 있으면 거침없이 확인사살을 하였다. 특히 교장바위는 선지피로 물들어 글자 그대로 시산혈해였다고 전한다. 이 교장바위 부근은 도살장을 방불할 정도로 처참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훗날 비극적인 이 바위를 교장바위라고 후손들은 전하고 있다. 즉 목을 졸라 죽인다는 교살(絞殺)과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는 장살(杖殺)을 줄여서 교장(絞杖)이라 하여 이 바위를 태안 사람들은 '교장바위'라고 이름 지어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 야라무라와 사이토, 초멸작전 돌입 11월 14일(陽 1

이 소식을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요약했습니다. 뉴스에 관심이 있으시면 여기에서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OhmyNews_Korea /  🏆 16. in KR

동학의병 백화산 교장바위 항쟁 역사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전봉준, 김개남과 재기포 계획 가까울 뻔하다전봉준, 김개남과 재기포 계획 가까울 뻔하다동학의병 총대장 전봉준은 김개남과 재기포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양사 스님들의 보호와 김경천의 밀고로 붙잡히게 된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동학의병, 총기포령으로 항일전쟁 준비동학의병, 총기포령으로 항일전쟁 준비동학의병군 총기포령, 남북접 연합 전선 전봉준 의병대장은 9월 12일 삼례에서 일본군 침략을 물리치자는 '동학의병창의대회'를 갖고 항일 기포 통문을 날렸다. 일본군은 청일전쟁 승리를 확신하며 동학 쪽으로 총부리를 돌리고 있었고, 조선군은 일본군의 하급 부대로 재편성된 상태였다. 일본군과 조선군, 보수민보군은 동학의병군을 토벌하기 시작하자 동학 지도부와 동학의병들은 이에 맞서기 시작했다. 전국 동학도인의 행동 방향을 최종 결정하는 회의는 5일간이나 계속되었고, 해월 최시형 법헌은 청수(淸水, 정화수)를 모시고 깊은 심고(心告, 기원)를 올렸다. 수운 대선생님의 신원과 척왜양창의의 대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결단을 내리고, 민심은 천심이라, 천명에 따르라. '호랑이가 물려고 들어오면 가만히 앉아 있다 죽을까!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서서 싸워야지' 전국의 동학도인들에게 명하노니, 모두 기포하라. 손병희에게 나의 지휘권을 넘기고 동학의병군 대통령에 임명한다.' 해월 선생의 총기포령으로 동학군은 각 지역에서 군 체제를 편성하고 전쟁을 준비한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우금티 대회전: 시산혈해로 패한 동학의병우금티 대회전: 시산혈해로 패한 동학의병동학의병들은 일본 침략군에 맞서 싸웠지만, 우금티 대회전에서 패배하고 시산혈해의 처참한 상황이 되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매경포럼] 트라우마에 갇힌 한국 사회[매경포럼] 트라우마에 갇힌 한국 사회아픈 기억 새출발 발목 잡듯탄핵 경험 국힘 당대표 퇴출대통령 선택 또 내몰린 국민지난 아픔 잣대로 판단 안돼대통령제 손봐 악순환 끊어야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윤핵관, 국민의힘 친윤계, 탄핵 방조죄? 헌법 망가뜨린 한국 정치윤핵관, 국민의힘 친윤계, 탄핵 방조죄? 헌법 망가뜨린 한국 정치윤석열 대통령의 반란 모의와 탄핵, 국민의힘 친윤계의 탄핵 반대와 윤핵관, 비대위원장의 대응 등 한국 정치의 민주주의 위기, 국민의힘 친윤계의 윤핵관 옹호, 탄핵 방조죄, 서산·태안 민주화유공자회의 성일종 의원 고발 등을 소개합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서산·태안 지역, 더불어민주당 조한기 위원장 현수막 논란에 정치권 긴장관계 고조서산·태안 지역, 더불어민주당 조한기 위원장 현수막 논란에 정치권 긴장관계 고조서산·태안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조한기 위원장의 현수막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국민의힘은 조 위원장을 고발할 예정이며, 민주당은 이를 '정당한 질문'으로 반박하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Render Time: 2025-04-10 19: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