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티 대회전: 시산혈해로 패한 동학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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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티 대회전: 시산혈해로 패한 동학의병
동학의병우금티 전투시산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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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병들은 일본 침략군에 맞서 싸웠지만, 우금티 대회전에서 패배하고 시산혈해의 처참한 상황이 되었다.

우금티 대회전, 시산혈해 로 패하다 동학의병 들은 일본 침략 군으로부터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그들과 맞서 싸웠다. 동학의병 군은 가슴에 동학궁을영부를 붙이고,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13자 주문을 외우며 전진 또 진격을 거듭하고 적군을 향하여 거침없이 돌진하였다. 오호라, 저들이 갈겨대는 총알은 소나기처럼 내리퍼붓고, 불꽃놀이처럼 쏘아 올리는 포탄은 천둥벼락처럼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동학의병 들은 어디서 그런 용기와 투지를 얻는지 그 어떤 두려움이나 무서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결국 우금티 대회전은 '사람의 시체가 산같이 많이 쌓이고 피가 바다같이 흘렀다.'고 전해지듯이 시산혈해 (屍山血海)의 처참한 상태로 패하고 만다. 우금티 전투 1차 접전은 11월 9일(양12.5)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이날따라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엄습해서 대부분 가을철에나 입을 옷에 짚신을 신은 의병연합군에게는 날씨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전봉준은 손병희와 의논하여 동학의병군을 총집결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 군은 일제히 동쪽으로 판치 뒤 봉우리에서부터 서쪽으로 봉황산 뒤편까지 40여 리에 걸쳐 진을 쳐라!' 일본군은 사냥개처럼 노려보고 동학의병연합군의 전략은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남의 3면을 둘러싸는 학익진의 포위 전술과 성동격서의 양면 전법으로 공주감영을 총공격하는 것이었다. 일본군과 관병연합군은 우금티를 중심으로 왼쪽 봉우리와 중심부에서는 일본군 모리오 대위가 이끄는 독립후비보병 제19대대 2중대가 사냥개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또 맞은편 경준봉에는 백낙완의 병력을, 고개 밑에는 성하영의 부대를 각각 배치해 주방어선을 쳤다. 일본군과 관군은 완벽한 방어전을 치고 동남쪽으로 금학동에는 오창성 대관의 통위영 부대, 웅치에는 홍운섭 영관의 경리청 부대와 구상조·조병완 대관의 부대가, 효포의 봉수대에는 장용진 영관의 통위영 부대와 신창희 대관의 부대가 진을 쳤다. 금강나루와 산성 쪽은 최규덕 공주목 비장의 부대가, 공주감영 뒤편 봉황산 쪽은 민병군이 각자 수비를 맡았다. 향군과 민보군들은 일본군과 경군의 지원을 받는 등 일본군과 관병연합군은 완벽한 방어와 의병연합군 격퇴의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손병희, 효포와 웅치를 공격 우금티 일대 1차 전투는 손병희의 주력부대가 효포와 웅치를 공격하여 공주성을 압박하는 전투로 시작되었다. 손병희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흐트러지자 전봉준의 주력부대는 우금티를 총공격하였다. 이에 맞서 일본군과 관병연합군의 무차별 포격과 자동소총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것으로 우금티 전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봉준 총대장과 손병희 통령은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효포와 웅치를 치고 공주영을 압박하라!' '우금티를 넘어 공주를 치고 한양으로 진격하자!' 동학의병군은 주문을 외우며 적진에 뛰어들었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우와와! 왜적들을 모조리 죽여라!' 우르릉 꽝! 펑! 피웅피웅! 일본군 후비19대대 모리오 대위와 관병연합군 선봉장 이규태 대장은 동학의병군의 총공격에 맞서 명령을 내렸다. '동학당을 모조리 사살하라!' 따르르! 따따탕탕! 콰르릉 쾅쾅! 피웅피웅! 전봉준, 전력에 밀리고 전략을 수정하고 일본군과 관병연합군의 엄청난 화력에 사상자가 속출하자, 전봉준 부대는 서쪽 주봉으로 방향을 틀어 일본군과 관군연합군을 유인하는 전술로 바꿔 공격했다. 우금티 고개 밑을 방어하던 성하영 부대가 후퇴하자, 모리오 중대장은 우금티와 견준봉 사이의 능선에 일본군과 중화기를 배치하여 공격해 오는 전봉준 부대를 향하여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일본군들은 산마루에 나란히 서서 일제히 사격을 가하다가, 동학의병군이 밀려 나오면 사격부대는 숲으로 숨고 포격부대가 나와 일제히 포격을 가하는 전술을 폈다. 전봉준, 손병희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전봉준은 한번 공격했다 퇴각하면, 그곳에 의병들의 시체가 쌓이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다급히 손병희 부대에 지원을 요청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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