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숙박 문화, 고위 관료들은 '템플 스테이' 선호

역사 뉴스

조선시대 숙박 문화, 고위 관료들은 '템플 스테이' 선호
조선시대숙박문화여관
  • 📰 OhmyNews_Korea
  • ⏱ Reading Time:
  • 72 sec. here
  • 8 min. at publisher
  • 📊 Quality Score:
  • News: 49%
  • Publisher: 51%

채널A 새 드라마 '에 용천루라는 호텔이 등장하며 조선시대 숙박 문화에 대한 흥미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고위 관료들은 민간 여관보다는 관청 시설을 선호하였는데, 이는 당시 사회적 상황에서의 숙박 문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채널A 사극 '에는 대궐 만한 호텔인 용천루가 등장한다. 고급 식당, 예식장, 연회장과 미용시설 등을 갖춘 이곳에는 세 등급의 고급 객실이 구비돼 있다. 드라마 제2회 초반에서 교관 방사선(김윤배 분)이 신입 교육생들에게 용천루 시설을 안내했다. 이때 그는 기본 객실인 홍의각과 한 등급 위인 청의각을 소개한 다음, 아래와 같은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 위 금의각(金擬閣)! 용천루의 가장 고급 객실이다. 비싼 만큼 아무나 묵을 수는 없다. 금의각 안에서는 손님이 원하시는 모든 접대에는 불가능은 없다. 손님이 원한다면 왕도 될 수가 있다.' 조선시대 의 숙박 문화는 실제로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여관업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을 강점할 즈음부터 이 땅의 관습과 문화를 샅샅이 조사했다. 한국인들의 심리와 의식을 연구할 목적에서였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조사 자료로 분류되는 이다. 이 자료의 연구 대상 중 하나는 숙박 문화다.

이 책은 주막이나 객주·여각 등으로 불리는 숙박 시설을 열거하면서, 상인들을 상대하는 업소에는 마굿간이나 창고 등이 갖춰진 경우도 있지만 이 업종 자체가 전반적으로 열악했다고 평한다.'왜소한 초가집과 불결한 음식물에는 조선의 풍토에 익숙한 모국인마저도 구토를 일으키게 만든다'고 혹평했다. 은 이 땅에서 숙박업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를 상류층과 고관대작 혹은 세도가들의 수요에서 찾았다. 이들이 민간 업소를 이용하지 않고 주로 관청 시설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책의 설명은 이렇다. '고래로 조선에서 여관업이 발달하지 않은 원인은 대관세도(大官世道)의 여행에 대해서는 관청의 일부를 이들의 숙박에 할당하도록 준비된 방이 있고, 주군(州郡)의 관리가 대접을 담당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돈을 물 쓰듯 하는 여행자에게도 마찬가지로 했던 데 있다.' 왕조는 공무상의 여행자에게 숙박 시설을 제공했다. 원(院)으로 불린 이런 시설의 흔적은 한양 사대문 주변의 지명에도 남아 있다. 홍제원·이태원·전관원(전곶원)·보제원·명일원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런 시설 외의 일반 관청도 관료나 고위층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했다. 위 책에도 설명됐듯이, 지방 관원들은 손님에게 객사를 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런저런 대접도 함께 제공했다. 관직과 관계 없는 재력가들도 그런 대우를 받는 게 가능했다. 광해군의 최측근인 어우당 유몽인의 에 나오는 전라도 남원의 부자 청년도 그런 대접을 받았다. 양씨 성을 가진 이 청년은 지방 수령의 친척이었다. 재력가라는 점과 더불어 혈연적 요인도 그런 서비스를 받은 배경이다. 에 따르면 양씨는 평안도 기생들을 동경했다. 그러던 차에 부모뻘 되는 친척이 평북과 평남의 경계인 정주목의 목사가 됐다. 양씨는 네 필의 말이 이끄는 호화로운 수레를 타고 정주목을 방문했다. 정주목사는 그에 대한 접대를 관기에게 맡겼다. 양씨는 그 상태로 무려 3년간이나 정주목에 체류했다. 갖고 간 금전 대부분이 관기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뒤에야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헤어진 옷에 나귀를 타고 처량하게 돌아가던 그는 기생과의 이별이 너무나 서러운 나머지 반나절쯤 가서 펑펑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옆에 상인 하나가 다가와 함께 울었다. 그도 정주목 기생과 사귀다가 돌아가는 중이었다. 서로의 사연을 듣고 동병상련을 느낀 두 남자는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잠시 뒤 양씨는'그 기생 이름이 뭡니까?'라고 물었고, 같은 인물과 만난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곧장 옷을 툭툭 털고 냉정하게 돌아섰다. 고위 관료들이 좋아했던 '템플 스테이' 고위 관료는 물론이고 양씨 같은 재력가들도 여행 중에 현지 관청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민간 업소를 가급적 찾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수치로 여겨졌다. 은'여관은 하등 사회가 숙박하는 장소로 돼 있었다'라고 말한다. 민간 업소에 묵는 것은 지위나 재력이 낮다는 인상을 주기 쉬웠다

이 소식을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요약했습니다. 뉴스에 관심이 있으시면 여기에서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OhmyNews_Korea /  🏆 16. in KR

조선시대 숙박문화 여관 관청 시설 고위 관료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왜 여관업은 발달하지 않았을까?조선시대, 왜 여관업은 발달하지 않았을까?채널A 사극 에 등장하는 호텔 '용천루'를 통해 조선시대 숙박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여관업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고위 관료들과 재력가들이 민간 업소를 이용하지 않고 관청 시설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조선시대 숙박 문화는 왜소한 초가집과 불결한 음식물로 인해 열악한 평가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이는 민간 업소 사용을 자연스럽게 낮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탄핵 정국에 불안한 자금] '믿을건 金' 개인 800억 매수[탄핵 정국에 불안한 자금] '믿을건 金' 개인 800억 매수안전자산 선호 현상 팽배기관 매수량보다 두배많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전주 견훤 백제 유적지 역사 문화 탐방전주 견훤 백제 유적지 역사 문화 탐방천년 전 견훤 백제의 왕궁 유적지, 동고산성 등을 찾아 역사 문화 탐방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조선시대 유향소: 지역 권력의 중심조선시대 유향소: 지역 권력의 중심이 기사는 조선시대 유향소의 역할과 기능을 다룬다. 유향소는 지역 사대부들이 주축이 되어 수령을 돕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며, 지역 행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귀신의 모습은 왜 나라마다 다를까? - 숭배의 나라, 대한민국귀신의 모습은 왜 나라마다 다를까? - 숭배의 나라, 대한민국한국인의 강한 종교성과 문화적 특수성을 탐구하며, 무속, 기독교 확산, 한국만의 귀신 문화, 저주술 등을 다룬.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대한민국, 신들의 나라 - '고인돌'과 '십자가'의 나라대한민국, 신들의 나라 - '고인돌'과 '십자가'의 나라한국인이 부지런히 종교를 따라가는 이유와 한국만의 독특한 무속 문화, 귀신에 대한 세계관 등을 탐구합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Render Time: 2025-03-13 10: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