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후 반시골로... 아내와 둘이 이러고 삽니다 양평전원주택 여상욱 기자
이름부터 곱다란 귀벼울 마을로 이사 온 지 1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직장을 나오고 두 아들을 출가시키고 나니, 부부는 흰 서리 머리칼을 인 채 천둥벌거숭이가 되었습니다. 도회지 생활 45년을 접고, 낯설고 물 설은 곳을 찾아 들었습니다. 경기도 양평이라고 촌락도 도심도 아닌 그냥 '반시골'이라 부르면 잘 어울리는 고장이지요. 동쪽으로 몇 발짝 더 가면 강원도와 만나는 전철 종착역이 있고, 서쪽으로는 하늘 한끝이 서울에 닿아 있어요. 도회지 내음을 맡지 않을 수도 없지만 마음 먹으면 한 시간 내 청정구역 홍천이나 횡성으로 나갈 수 있는 길목입니다. 집 생김새는 박공형 아스팔트 슁글 지붕을 얹은 복층 목조 주택이고, 편백나무 벽재 거실과 함께 보일러실과 창고를 양 쪽에 거느리고 남서서쪽을 향하여 앉아 있습니다.
거실에서 날짜 지난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아내가 모닝 커피 한 잔을 들고 옆에 앉습니다. 밤새 앞집 고양이가 놀다간 잔디밭 곳곳이 파헤쳐졌다며 애먼 나한테 눈을 흘깁니다. 우롱차 한 잔씩을 들고 두 사람은 대문을 나섭니다. 5분여를 걸어 남한강변 산책로를 들어서니 부지런한 이웃 어르신이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며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옆얼굴을 스치는 강바람이 아직 남아있는 늦겨울을 배고 있는 듯 차갑습니다. 사람은 체력이나 지력보다 감정이 먼저 늙는다고 합니다. 감정의 노화 속도를 늦춘다는 숲과 강물과 바람의 삼중주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힘에 감사할 뿐입니다. 환갑 지나 머리에 흰서리 맞은 아내가 5일장에 먹을거리 장 보러 간다고, 손주까지 본 할애비한테 데려다 달라고 응석을 부립니다. 못 이기는 척, 함께 집을 나서 시장으로 차를 달리는데 도로 오른편에 전망 좋은 커피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간도 넉넉하고 커피 냄새도 맡을 겸 숍 문을 들어섭니다.
이윽고 마트에 도착합니다. 쇼핑백을 들고 아내를 따라다니며 고른 물건을 집어넣기 바쁩니다. 상가번영회에서 2만 원어치를 사면 쇼핑백을 주고 3만 원 이상을 사면 1등으로 모닝 승용차 1대가 걸려 있는 경품권을 준다고 합니다. 7900원짜리 계란 1판, 생강 조금 980원, 고등어 한 손 7800원, 쪽파 1단 3500원, 1900원짜리 시금치 1단, 파프리카 3개 1020원, 마지막에 큰맘 먹고 소고기 한 팩 1만9860원.... 경품권 1장을 받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내 폰에는 작은 며느리가 보낸 생일 케이크 알람이 울고, 아내 폰에는 손주가 뒤집기 성공했다고 보낸 동영상이 돌고 있습니다. 큰며느리는 사돈네 둘째 딸이고, 작은며느리는 친정 큰딸입니다. 딸 귀한 우리 집안에서 며느리 둘은 새로 얻은 딸입니다. 큰딸은 애교 부릴 줄 알아서 이쁘고, 작은딸은 요리조리 챙겨줘서 이쁩니다.
그런 아내라는 작품에 비하면 나는 너무 초라하답니다. 어느덧 우리 나이테를 먹고 자란 두 아들은 산이 되어 우뚝 솟았고 각자 짝을 찾아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동안 쬐어준 햇볕, 다독거려준 손길, 가리켜 준 눈길 따라 제 길을 잘 가 주어 더없이 고맙습니다. 피가 섞여서라기보다 아내와 내가 쏟은 땀과 사랑이 버무려져 빚어진 나름의 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작품으로 선택하여 만난 한 아내와 남편, 아버지의 검박한 바탕과 어머니의 뾰족한 끼가 합쳐져 매달린 열매라고 해야 할까요.예순도 중턱까지 올라온 남편과 아내, 두 아들과 새 가족이 된 두 며느리, 지난해 5월에 태어난 손주까지. 이렇게 우리를 빚어낸 공신은 아무래도 아내입니다. 콩나물시루를 빠져나온 물이 된 두 며느리의 시어머니는 딸 둘을 덤으로 얻었다고 기뻐합니다. 그런 아내를 지긋이 바라보는 초보 할아버지도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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