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이두황
1년이 11개월밖에 없었던 해가 있다. 음력으로 을미년 11월 16일은 양력으로 1895년 12월 31일이다. 이 날을 마지막으로 조선에서 음력이 폐지되고 다음날부터 양력이 사용됐다. 음력에 익숙해 있었던 조선인들은 11월의 절반과 12월이 뚝 잘려 나가는 인식상의 대혼란을 겪게 됐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도와 시해에 가담한 이두황 같은 친일 군인들은 그것을 변고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한일 협력'을 위한 일이라고 자부했다. 일본을 견제하고자 '한러 협력'을 추진하는 고종 부부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합리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894년, 일본군이 자국민 보호와 동학혁명 진압을 빌미로 조선 땅에 무단으로 들어왔다. 한국 역사학계가 '일본 침략'보다는 '일본 파병'이나 '일본군 상륙' 등으로 부르는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어난 일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지위를 높여갔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 시기에 그가 벌인 일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반외세 항쟁인 동학혁명을 진압하는 조선군의 양호우선봉장으로도 활약했다. 호남·호서의 동학군을 진압하는 이 직책을 수행하면서 를 남기기도 했다. 이두황이 달아난 지 11년 뒤인 1907년에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를 당했다. 이두황은 그 직후에 특별사면을 받고 귀국해 이토 히로부미의 후원하에 중추원 부찬의, 전북관찰사, 전북재판소 판사 등을 역임하고, 1910년 일제 강점 뒤에 전라북도장관과 전북토지조사위원장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사망했다.일본은 그에게 답례를 많이 했다. 청일전쟁 직후와 고종 퇴위 이후에 그가 역임한 관직들은 일본이 준 것이었다. 여기서 발생한 친일 녹봉 외에도 많은 친일재산이 그에게 주어졌다.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영부인 마음 얻고, 남편 출세시킨 그 여성의 실체[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박마리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세계가 주목했던 노동운동가의 변절... 충격적 부고기사[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김경식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몇 번이고 탄핵받고도 남을 만한 친일 방송인[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이혜구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이광수의 친일은 그저 국가보안법 때문인가?[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이광수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리뷰] 멜로드라마의 원조 김말봉 작품 세계 재조명,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일제강점기 잔재인 공창제 문제의식을 담은 ‘화려한 지옥’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김동연, ‘경기북부 대개조 프로젝트’ 선제적 추진생활 인프라 확충, 교통 인프라 개선, 공공기관 이전, 투자유치 등 추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