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 침탈 도운 한국인 친일파 일진회 독도 친일청산 일제_식민지배 김종성 기자
1905년 2월 22일 독도가 일본 시마네현에 편입되도록 만든 사건이 러일전쟁이다. 일본은 전년도 2월 8일에 발발한 이 전쟁의 승리를 확정짓고자 독도를 강점했고,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독도 강점을 굳혔다.
실제로, 독도가 동해해전에서 전략상으로 대단히 긴요한 곳이었다는 사실은 발틱 함대의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중장이 의식을 잃은 채 포로로 잡힌 곳이 울릉도 부근이었고, 그를 대신하여 함대의 지휘권을 장악한 네보가토프 소장이 모든 주력 잔함을 이끌고 일본에 투항한 곳이 독도 동남방 18마일 해상이었다는 점을 통해서도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러일전쟁 얼마 전만 해도 이용구는 일본제국주의와 대립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반외세·반봉건을 외친 동학군의 일원이었다. 1868년 경상도 상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2세 때인 1890년 동학에 입교해 제2대 교주인 최시형에게 교리를 배웠다. 그런 뒤 1894년 동학전쟁 때 충청도 청주에서 참전했다.
이 책은"진보회원들이 정부로부터 탄압받았을 때 일진회가 변호하거나 석방될 수 있도록 적지 않은 압력을 가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진회를 도피처로 삼아 정부 탄압을 피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 의식이 불철저했던 점 역시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친일로 돌아선 이용구는 그 노선을 확고히 견지했다. 을사늑약 보름 전인 1905년 11월 5일에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돼야 한다는 선언서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선언서에서 그는 분연히 궐기할 힘이 없다면"우방의 지도에 순응하여 문명을 진척시키고 독립을 유지함이 가하다"라며 일본의 지도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그런 뒤"그 지도 보호에 의지하여 국가의 독립과 안녕, 그리고 행복을 영원무궁하게 유지하고자 여기에 감히 선언한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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