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마을에 조선인 넘겨 살해하게 한 일본 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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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마을에 조선인 넘겨 살해하게 한 일본 당국 오충공 민병래 기자

일본 정부는 1923년 이래 관동 조선인 대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했다. 영화 한두 편으로 세상의 진실을 다 밝힐 수 없지만 일본이 감추려 하면 할수록 오충공은 한 발 더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다.결국 다음 작품을 결심하고 오충공은 1편에서 조인승이 끌려갔다고 한 나라시노 수용소 옛터로 카메라를 들고 간다. 그 결실이 바로 1986년에 발표된 이다. 이 작품은 지바현의 나라시노 수용소에 갇힌 조선인을 인근 마을의 자경단에게 넘겨 살해하게 한 충격적 사실을 다뤘다.지진 이틀 후인 1923년 9월 3일, 임시진재구호사무국은 중요한 정책 전환을 결정한다. '조선인 습격설'을 명분으로 계엄령을 내리고 군대가 출동해 직접 조선인 학살을 자행했지만 반격이 없는 일방적 전투였다. 거리 곳곳에는 에서 증언된 자경단의 무차별 살해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일상적으로 조선인을 감시하던 특별고등경찰의 내선계가 앞장섰다."악덕 학생과 평소부터 주의를 요한 청년에 대해 2일부터 3일에 걸쳐 주로 요도바시, 스가모 및 기타 파출소와 협력하여 검속을 개시해 4, 5일경까지 약 4천 명을 잡아들였다"는 기록은 그 실상을 보여준다. '악덕 학생'은 일본의 사상경찰이 조선에서 온 유학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렇게 적당 처분으로 사라지는 조선인이 있기에 계엄 당국은 수용된 숫자를 애매하게 기입했다."요도바시 경찰서에 약 160명 보호 중"과 같은 기록이 하나의 예다. 수사기관이나 헌병대에서 신병을 처리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 '인적사항'과 '숫자'다. 그런데 약 160명이라면 155명에서 많게는 164명까지니 수사기관에서 사람을 기록하는 숫자로는 적절치 않다. 수용 상태나 이동 과정에서 '적당 처분'된 사실을 은폐하려고 사용한 기록 방식이었다.'양민'의 판정을 받고 수용소에 가도 전시 포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군대와 경찰에 잡힌 조선인이 육천 명이 넘는데 이 중 삼천여 명이 나라시노 막사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심한 부상을 입었으나 이렇다 할 치료를 받지 못해 적잖이 생명을 잃었다. 그 외에 메구로 경마장이나 가나마루 가하라 수용소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수용소 인근 마을의 자경단에게 조선인을 살해하도록 한 이 잔혹한 범죄는 와타나베의 영상 증언으로 재차 확인된다. 그는 본청에 보고하기 위해 나라시노 주재순사와 빈번히 연락을 취해 조선인 수의 통계를 적었다. 어느 날 숫자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한 그는 말한다.앞서 기미가츠의 증언과 궤를 같이한다. 이송되지 않았는데 수용소의 인원이 줄었다면 탈출한 것이기에 이는 경비부대로선 비상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주자에 대한 수색 작업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인근 나기노하라 마을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이곳에선 살해 장면과 칼을 휘두른 자의 이름까지 적혀 있는 자경단원의 일기가 발견되었다.과 은 일본에서 천 번이 넘게 상영되었다. 재일동포만이 아니라 양식 있는 일본인도 이 영화를 찾았다. 한국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대에 올려졌다. 1998년에는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해외 코리안 작품으로 초대되었다.

학교는 고통이었다. 조선놈 소리, 때로는 학교 오가는 길에 돌팔매도 날아오고. 결국 조선학교로 전학했고 재일동포의 정체성에 눈을 떴다. 관동대학살에 관한 작품을 하면서 이것이 결코 재일동포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민족 전체의 문제라는 자각을 했다. 그 깨달음 덕에 오충공은 역경 속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오는 9월 1일 백주년을 앞두고 오충공의 세 번째 작품 이 개봉된다. 이 영화는 관동대학살의 유족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유족을 오랫동안 찾아 나선 감독 자신의 순례기이기도 하다. 언제인지 기억은 없지만 조선인을 기리는 묘비, 추도비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던 것 같다. 사이타마의 조세지 사원 묘지에 있는 강대흥의 묘 앞에 섰을 때 갑자기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다. 강에게도 조선의 육친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족을 찾는 일은 애로가 많았다. 강제동원이나 강제징병의 경우엔 생존자와 유족도 많고 기록도 풍부하게 남아 있지만 관동대학살은 달랐다. 살아 돌아온 자는 모두 숨졌고 학살당한 이에 대해 제대로 조사된 명단이 없었다. 그렇기에 유족을 확인하고 발굴하는 문제가 쉽지 않았다 이런 노력 끝에 오충공 감독이 발굴한 유가족은 모두 일곱 가족 열세 명이었다. 2017년 8월 20일 부산에 있는 '강제동원역사관'에서 이들과 함께 유족회 발족을 위한 모임과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오전에는 옛 부산부두 인근 수미르 공원에서 조상의 영령을 기리는 제사도 모셨다. 그 당시 대부분의 조선인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에서 내려 일본 내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학살 피해를 당한 지 90년이 넘어서 이뤄진 일이다.

강덕상의 역작인 4권이 완간되었을 때도 출판기념회를 열지 못했고 독립기념관에서 학술상을 받았을 때도 축하모임조차 만들지 못했다. 모두 코로나 때문이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강덕상은 병상에서 하루 열 차례나 오충공을 찾았다고 한다. 그를 아끼고 그에게 의지했던 까닭이리라.오충공도 그런 강덕상을 흠모하고 늘 배움을 청했다. 을 만들 때 그는 강덕상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강덕상은 관동대학살의 진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인도해줬다. 흥분한 자경단에 의해 저질러진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조선인의 민족해방투쟁에 놀라 조선인 자체를 적대시하는 일본제국주의의 민족 범죄라는 시각을 세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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