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기후정의 현장르포] 밀양송전탑반대 청년활동가들 이야기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갔어요. 그랬더니 다들 혼내더라고요. 이 몸으로 왔냐고. 어르신들에게 두세 배의 사랑을 받았죠. 송전탑 아래 다녀올 때는 목발을 짚고 다녀왔어요. 두 달이 넘었는데도 그때 생긴 물집이 아물지 않네요."
그랬던 이들은 행정대집행 이후에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았다. 지원은 자신이 쓰는 전기와 생산하는 폐기물을 고민하는 30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었고, 화경은 청년 활동가 커뮤니티를 꾸리고, 장애인과 함께 노래 수업을 하는 20대 활동가가 되었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밀양과 삼평리에 모였다. 이곳이 자신을 키웠다고, 여전히 자신의 삶과 이곳을 떨어뜨려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말이다.이번 집회를 준비한 기획단 역시 밀양에서 자란 이들이 꾸렸다. 기획단 단장 어진은 고등학생 때 밀양에 와서 대책위에 들어갔다. 행정대집행 이후로도 계속 밀양에 살며 목수가 된 그는 이곳에서 만난 지원과 종종 함께 일했다. 바쁘게 목수의 업을 이어가던 어진이 이번 집회를 준비해야겠다 마음먹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먹은 뒤, 업을 포기하고 집회에 매진하겠다는 결정하기까지는 두 달이 더 걸렸다. 설비를 갖춘 목수가 일을 쉬면 빚이 달에 몇백씩 쌓인다.
한때 그림자처럼 뒤에서 보필하던 어진은 이제 마을 주민들 없이 움직인다. 그는 20대이지만, 생명의 탄생보다 더 많은 소멸 속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부고가 많은 달에는 한 달에 두어 번 빈소에 갈 때도 있다. 어르신들과 나누는 대화의 60%가 병원 얘기다. 어디가 아프고, 그래서 병원을 갔는데 뭐가 문제고.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속상한데, 또 다른 핵발전소와 송전로 소식을 듣는 것은 그에게 고역이나 다름없다. 2017년,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보고서'가 발간됐다. 한국전력이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하며 마을을 얼마나 갈가리 찢어놓았는지 모른다. 대소사를 함께 챙기던 옆집 이웃이 해코지할지 몰라 두려운 존재가 되고, 음식을 나눠 먹는 대신 민원과 쟁송을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2년 뒤, 대책위 내부에서 비민주적인 운영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혜원이 떠난 건 이 문제가 공론화된 즈음이었다. 혜원의 세계가 흔들렸다. 무섭고 화도 났지만, 20대 초반이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느꼈다.
당시의 일은 어진과 혜원에게 일종의 폭력의 경험이었다. 중장년 활동가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처럼, 어진과 혜원도 영영 보지 않을 것처럼 싸우고 서로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랬던 어진과 혜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찰하고, 만나 화해하고, 함께 밀양의 의미를 되짚고, 다시 얼굴을 맞대고 치고받고 싸우며 이번 집회를 조직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꼈던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친구들에게 공명을 일으켰다. 지원과 화경은 집회에 다녀온 뒤, 추억에 잠기기보단 앞으로 자신이 뭘 같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이 운동에서 내가 쓸모 있을지 모르겠지만, 쓸모를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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