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15] 압도적 전력의 인민군... 나라를 구한 6사단
대양 건너 남의 땅의 지도에 자를 대고 간편하게 '찌익' 그은 선이 38선이다. 바다와 섬과 강과 산을 넘어가며 남과 북을 깔끔하게 갈랐다. 그 가운데 북한강 다리 하나의 바로 북쪽을 지났다. 남쪽을 점령하기로 한 미군은 다리 북단의 공간이 초소를 만들기에는 너무 밭아서 다리 남단에 초소를 세웠다. 다리 중간에 38이란 숫자를 페인트로 큼직하게 써놨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병력이다. 개인의 싸움이든 정규군의 전쟁이든 병력의 차이는 승패를 가른다. 당시에 국군은 8개 사단으로 병력은 9만5천 수준이었다. 인민군은 10개 보병 사단을 비롯하여 탱크와 자주포로 무장한 105기갑여단, 포병연대, 706기계화연대, 공병연대, 유격연대 등을 포함해 총 18만여 명이었다. 남북에 정부가 각각 수립된 이후 확군의 속도와 성과는 북한이 두 배가 될 정도로 우세했다. 결과적으로 국군의 사단장급 지휘관으로서 정규전에서 소총 중대급 이상의 부대를 실전에서 지휘해본 경력자는 한 명도 없었다. 총참모장인 채병덕부터 병기병과 출신으로 작전지휘에는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따라 붙었다. 남한에서는 말로 하는 정치 지도자는 많았으나, 몸으로 전쟁을 감당할 군사지도자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실제 한국전쟁 초기의 양상이 그랬다. 38선에서부터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적지 않은 부대는 대오가 흩어져 말로는 작전상 후퇴이지만 패잔병과 다를 바 없이 지리멸렬하기까지 했다. 다만 미국이란 헤비급 선수가 서둘러 개입하여 완전한 패전으로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선수의 승패는 곧 구단의 성패다. 선수인 국군이 패퇴를 거듭하자 국가의 존망은 휘청거렸고 백성들은 전후방 어디든 커다란 고통의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음미할 것의 하나는, 선수의 체급 문제는 선수가 아니라 구단과 구단주의 문제란 것이다. 미들급 선수와 맞붙는데 플라이급 선수를 내밀 수밖에 없는 구단이라니.
가장 큰 문제는 38선의 일선부대는 북한의 남침 징후를 계속 보고했는데 군 수뇌부는 이를 묵살 내지 무시했거나, 대단히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것이다. 적이 기습을 한다고 해도 그에 대비하고 있으면 기습의 효과가 반감할뿐더러 역습의 기회까지 잡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남한의 정부와 국군 수뇌부는 이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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